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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12-14 (금) 03:57
분 류 수요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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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147    
약한 자들을 배려하라(신 24:1-6, 10-15)



제가 오래 전에 미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얼마되지 않아 느낀 점이 미국 사회는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나 노약자, 장애인이나 가난한 자들, 그리고 여자들에 대한 배려가 사회에 배여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청교도 신앙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요즘은 한국도 사회 복지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고, 금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든지 사회의, 공동체의 약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율법을 허락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율법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율법적인 사회가 아니라 인자와 공의가 이루어지는, 약한 자의 소리를 듣고 그 어려운 사정이 고려되는 사회였습니다. 비록 법은 그렇더라도 약한 자에 대하여서는 얼마든지 예외가 인정되고, 그 부르짖는 소기를 수용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에서는 ‘여자’와 ‘가난한 자’들에게 대하여 배려할 것을 명하십니다. 요즘에야 덜하지만, 옛날에는 정말 여성들은 사회적인 약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여성들의 웰빙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는 여자의 재혼을 허용한 것과 방금 결혼한 아내를 위하여 남자가 1년을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도록 했습니다. 우선 5절을 보시면,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 보내지 말 것이며 그는 일년 동안 집에서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그런 경우가 흔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여자가 시집을 가게 되면 할 일이 많아져서 적응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의 경우는 새색시가 시집을 오면 예쁜 한복을 입고 하루 혹은 이틀 정도 일을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무지막자한 시집살이가 시작되는데, 남편의 사랑도 제대로 못 받고 시집 식구들의 모든 의무를 다 감당해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시어머니나 시누이에게 미움까지 받으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여자들이 결혼을 하면 1년 동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록 했습니다. 결혼한 남자들에게는 1년 동안 아무 일도 맡기지 않고 오직 신부만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의무였습니다. 전쟁이 나도 새 신랑은 전쟁터에 보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신랑이 전쟁터에서 죽게 되면 신부가 한평생 남편을 생각하며 울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신부의 1년은 지켜주었습니다. 그러니 신부에게는 그 1년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면 신부는 그 행복을 가지고 평생을 힘을 내어 시집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남편이 1년 동안 자기 만을 사랑하고 헌신했는데 불평불만을 가질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스라엘 여자는 얼마나 복을 받은 여자들이었습니까? 무엇보다 남편이 1년을 아내를 위하여 사랑하고 헌신하면 훈련이 잘 되어서 남은 여생도 아내를 사랑하는데 별로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어릴 때에는 사랑을 받을 줄만 알지 줄 줄을 모릅니다. 사춘기 시절에 친구들과 우정 속에 조금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만, 정말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은 결혼하여 배우자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입니다. 남편도 1년 동안 잘 배워서 습관이 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쉬워지게 됩니다.

   또 하나는 이혼을 허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 내어 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1-2절)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혼을 허용하는 것이, 좋아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원리원칙에 의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은 안된다. 한번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예외를 허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옳고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도저히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을 때에는 강요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한평생 배우자에게 맡기고 사는 것인데, 문제는 인간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둘 사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버릴 때에는 버림 받은 여자가 얼마든지 다른 남자와 재혼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여기 1절에 “수치 되는 일”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원어에 의하면 ‘부끄러운, 벌거벗은’ 등의 뜻으로 어떤 사람들은 간음으로, 아니면 아내의 육체적인 결함, 혹은 어떤 부족함이나 병으로 남편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유이든지 간에 이혼증서를 써서 내어 보내도록 하고, 그렇게 된 후 여자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혼증서를 쓰게 한 것도 남자가 쉽게 여자를 버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재혼한 후에 그 남편도 여자를 버리거나, 혹은 그가 죽거나 하면 다시 이전 남편에게로는 돌아갈 수 없도록 했습니다(3-4절). 이전 남편이 자기 기분대로 버렸다가 다시 취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 행위를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죄 짓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또 다른 사회적인 약자는 가난한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배려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너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으면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빌리거나 구걸을 하게 됩니다. 훔치는 것은 죄이니 할 수 없고, 또 어떤 사람들은 구걸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해서 대게 빌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의 것을 빌린 후에 갚지 못하면 어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은 보장이 되도록 배려하라고 합니다.
   우선 먹고 사는데 꼭 필요한 생필품은 차압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람이 맷돌의 전부나 그 위짝만이나 전집하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집함이라”(6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전집이란 빚을 못 갚아 빚쟁이가 차압하는 것이나 저당 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맷돌은 가장 필수적인 도구였습니다. 밀이나 보리를 맷돌에 갈아서 그 껍질을 벗겨서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빚을 안 갚는다고 맷돌의 전부나 그 위쪽을 가져가 버리면 식사를 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빚을 갚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맷돌은 가져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즉 먹고 살게 하면서 빚을 갚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또한 물건을 저당 잡힐 때에도 절대 그 집 안에 들어가서 취하지는 말라고 합니다. “무릇 네 이웃에게 꾸어줄 때에 네가 그 집에 들어가 전집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섰고 네게 꾸는 자가 전집물을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10-11절) 하였습니다. 즉 이웃집에 돈을 빌려주면서 저당물을 원할 때 직접 그 집 안에 들어가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집 밖에 서서 그 사람이 가지고 나오는 것만 저당으로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나 이 미국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차압이 들어오게 되면 인정사정이 없지요.
   그리고 입은 겉옷은 저당 잡히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12-13절) 하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틴 사람들은 겉옷이 이불을 대신했습니다. 그곳은 일교차가 심해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밤에 잘 때 겉옷을 덮고 자는데, 만약 그 겉옷을 저당으로 가져가 버리면 밤에 추위에 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그 사람의 겉옷을 가져갈 권리가 있고, 옳다고 해도 옷을 해가 질 무렵에는 돌려주어서 그 사람이 추위에 떨지 않고 잠을 자도록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가나한 품꾼을 학대하지 말고, 품삯 주는 것을 연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네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데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14-15절)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자가 품꾼에게 일을 시켜 놓고 품삯을 빨리 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 보통 일주일이나 한달씩 늦게 주는 경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사실 품꾼은 하루 일해서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일을 시켜 놓고 제때 삯을 주지 않으면 그들은 굶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든지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품꾼에게 일을 시켰으면 당일로 그 삯을 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시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푸라고, 좀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만약 우리 남편들이 아내들을, 남자들이 여자들을 연약한 배필로 보고 배려를 하며, 사랑한다면 그런 공동체, 그런 사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또한 부자라고 해서 다 그렇게 베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게 보이는 자들이 더 잘 베풀 때가 있습니다. 또 가난하다고 해서 늘 얻어 먹고, 빚 가운데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부자, 가난한 자는 상대적인 표현입니다. 기준을 어디다 놓고 내가 부자, 가난한 자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옆에 있는 사람보다 조금 낫다면 좀 양보하고, 베풀어서 정말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고, 춥지 않게 베푼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축복하시고, 그런 공동체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늘 약자 편이었습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주님은 버림받은 사람,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 장애인, 그리고 어린아이 편이었습니다. 고아와 과부에 대한 배려는 구역 성경에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올해 년말을 맞이하며 성탄의 계절이 다가왔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중에 조금이라도 약한 자들과 나누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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