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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7-11 (월) 09:5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82    
성도의 의무(1) (롬 12:9-13)


나중에 여러분들의 장례식에서 여러분들의 후손들과,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하던 성도들에게 어떤 분으로 각인되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논하면서 어떤 말들을 할까요? 여러분들은 이 땅을 떠나면서 어떤 유산(legacy)을 남기려고 합니까? 그들이 여러분의 관 앞에서 슬퍼한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퍼할까요? 그냥 단지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였기에 슬퍼한다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을 산 것일까요? 아니면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 잘 죽었다, 오히려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좋았다는 말을 듣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시렵니까?
지난 주일에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릴 때 제일 먼저 우리의 가정, 교회에서 드려져야 한다고 했습니다(3-8절). 받은 은혜, 은사대로 믿음의 분수에 맞게 겸손히 드려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은사의 가장 기초, 기본이 되는 것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사는 성도라면 당연한 의무가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부터 다음 주에 살펴볼 12장 마지막 절까지 성도의 마땅한 의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9절)고 하였습니다. 왜 앞절들에서 은사를 말씀하시고는 사랑에 거짓이 없다고 했을까요? 원어에 의하면 여기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그리고 “거짓이 없나니”는 위선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연극하듯이, 가면을 쓰고 하듯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고상한 덕목이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온전히 아가페 사랑을 하지는 못해도,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경험하게 될 때에 그 반응으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유명한 성 어거스틴은 라틴어로 까리따스(caritas)라고 했는데, 영어로는 charity or virtue 이며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선(慈善), 자애(慈愛), 애덕(愛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든 우리말이든 번역이 이 단어의 뜻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즉 까리따스는 인간에게 나타나는 가장 고상하고도 순수한 사랑입니다. 결코 위선적일 수 없습니다. 거짓일 수 없습니다. 이 까리따스 사랑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기쁘고 즐겁게 그 사랑을 나타내고 삽니다.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은 사람들의 태도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하나님 안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기 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까리따스 사랑을 베풀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입었기에 말입니다.
그리고 악(evil)을 미워합니다. 여기 “악”은 거룩함(holiness), 의로움(righteousness)의 반대말입니다. 까리따스 사랑은 악을 미워합니다. 죄악까지 품는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악을 거절하고 죄를 미워하되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죄악을 버리도록 돕는 것이 아가페 사랑을 닮는 까리따스 사랑입니다. 다윗은 “사특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지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시 101:4) 하였습니다. 오히려 선에 속합니다. 여기 “속한다”는 풀로 붙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선에 꼭 붙어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에 자신이 속해있는, 붙어있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이어서 바울은 10절부터 13절까지 교회에서의 성도의 의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우선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10절상) 하였습니다. 바로 가정에서 한 피를 나눈 형제, 자매들의 서로를 향한 Brotherly Love 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12사도들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많은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고 하실 때, 사도들이 아가페 사랑을 본받아 형제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한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형제, 자매로 묶어주셨으니 친 형제, 자매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한 부모 아래의 자녀들이 서로 우애하듯이 말입니다. 이 형제 의식이, 지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남을 대하듯이, 다른 가족을 대하듯이 별 관심도 안 보이고 우애하지 않으면 나중에 천국에 가서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주님 얼굴 보기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2) 그리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10절하) 하였습니다. 형제 사랑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형제, 자매를 나 자신보다 위에 놓고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성도라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존중해야 합니다.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이것을 잘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으면 화를 내며 욕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그런 태도로 교인들을 대하지는 않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존중하는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옆에 있는 형제, 자매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에게 대하듯이 해야 합니다.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어린 후배들에게도 말입니다. 함부로 하시면 안됩니다. 3) 부지런히 열심을 품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섬기라고 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11절)고 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주님을 섬길 때, 교회를 섬길 때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라”(히 6:11-12)고 하였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맡은 바 직분에 책임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누가 보던, 안 보던 내 형편이 어떻든지 관계없이 말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지근하지 않습니다. 뜨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 은혜 때문에 열심을 품고, 열정(passion)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4) 시련이 와도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잘 참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12절상) 하였습니다. 교회를 섬기다 보면 시험이, 시련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소망이 확실하기에, 소망이 있기에 즐거워하며 어려움을 잘 참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고, 때가 되면 주님 앞에 설 날이 있기에, 그 날을 소망합니다. 나의 수고가 하나도 헛되지 않을 줄 믿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고 하였습니다. 아멘!
5) “기도에 항상 힘쓰며”(12절하) 하였습니다. 여기 “힘쓴다”는 동사는 ‘헌신하다(devote)’는 뜻입니다. 성도라고 한다면 늘 기도에 힘쓰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기도가 필요한 것을 모르는 성도는 성도가 아닙니다. 기도가 필요한 것을 알기에 항상 기도하려고 합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말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구원을 받은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이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들으실 줄도 안다고 하였습니다(요일 5:13-15). 그래서 구원 받은 성도는 기도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6) 다른 성도의 필요를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주려고 합니다.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3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공급한다”는 말은 ‘교제(fellowship)’라는 명사에서 나온 것으로, 성도의 참된 교제라 함은 성도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관대함을 말합니다. 그 한 예가 손 대접하는 것입니다. 당시 초대교회 교인들은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로마 제국의 핍박을 피해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오늘날처럼 여관이나 호텔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나그네 성도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하룻밤을 묶도록 배려하고 먹을 것을 주었던 것입니다. 즉 자주 자신의 집을 열고 성도들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성도들에게 말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언약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한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가페 사랑에 감격하여 반응하는 까리따스 사랑이 있어야 확실한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는 말씀은 바로 그 뜻입니다. 사랑을 해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 영혼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참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까리따스 사랑을 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진실한 사랑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성도들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언약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진실한 까리따스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에 속하여 붙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섬길 때에 형제 자매들을 우애해야 합니다. 한 피 받아 한 몸이룬 가족애를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가까울수록 함부로 대하시면 안됩니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섬겨야 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도 소망을 가지고 참아내야 합니다. 아니 소망 때문에 오히려 즐거워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에 힘쓰셔야 합니다. 늘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무엇이 필요한 줄을 알아 그들의 쓸 것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짐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무엇을 남기고 가시렵니까? 만약 내일 여러분을 부르신다면 짐승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그럼 여러분의 이름을 후손들이 어떤 이름으로 기억이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들에게 어떤 분으로 기억이 될 것 같습니까? 만약 까리따스의 사랑을 보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도 않고, 부지런히 열심을 품고 교회를 섬긴 것도 아니고, 조금 어렵다고 참지 못하고 그만 두거나 게으르고, 기도 생활도 열심이 없었고, 성도들의 필요를 외면하고 산다면 아무도 여러분의 관 앞에서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헛된 인생이었다고 하겠습니까?
오히려 진실한 까리따스의 사랑을 베풀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예의 바르게 존중하며, 교회를 섬기면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정말 열정을 다한다면, 모든 기도 모임에 함께 하며 합심하여 기도하기를 힘쓰며 크고 작은 일에도 늘 기도하며 살면서 시련이 와도, 섬기다가 어려움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잘 참고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성실하게 감당하며, 성도들의 쓸 것을 채워주고 손 대접을 잘 하신다면 여러분의 관 앞에서 안타까이 슬피 우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멋진 인생이었다고 칭찬과 명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어떤 유산(legacy)을 남기시렵니까? 우리 모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고후 5:10).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언약 백성으로, 성도로 마땅한 의무인 진실로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기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잘 참으며, 있는 것으로 교우들과 나누며, 항상 기도하며 살았기에 모든 이들에게 길이 기억에 남을만한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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