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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9-09 (월) 05:4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80    
능력있는 삶(고전 16:13-14)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능력한 삶을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탄, 마귀의 궤계와 공격을 받고 유혹이 오면 너무 쉽게 무너지는 분들 말입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적의 화살을 맞고 부상 당하는 무능력한 군인입니다.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시니 대적들을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는데, 대적들에 대하여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훈련을 받지 않아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자신이 누군지 정체성이 희미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신에 대해 착각하고 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그 비결을, 원칙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동안 바울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많이 책망하였습니다. 1장부터 15장까지 그들의 잘못된 교리와 행동들을 지적하고 고치기를 원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사랑으로 책망하고 가르치듯이 말입니다.
   이제 그 책망과 가르침의 결론을 오늘 본문 두 구절에서 다섯 가지 명령으로 요약하고 있는데, 바로 이 다섯 가지가 우리 믿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능력 있는 삶을 사는 비결을, 그 원칙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13-14절)! 우리 말 번역에는 다섯 가지 명령이 분명하지 않지만, 헬라어 원어에는 다섯 가지 동사가 명령형으로 쓰여 있습니다.

   첫째, “깨어(be alert)” 있으라는 명령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믿는 자들이 영적으로 잠들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할 때에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세상 종말이 가까워 주님 재림이 곧 다가올 것을 생각하고 깨어 있어야 할 것을 말할 때였습니다. 아니면 사탄, 마귀의 궤계를 생각하고 경계할 때에, 방심하지 말 것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신약 성경에서는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할 영역에 대한 것을 네 가지 정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사탄, 마귀를 대항하기 위하여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절상)고 하였습니다. 정말 우리는 사탄, 마귀의 궤계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지게 하려고 힘쓰고 있는 것을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요일 2:16). 대적이 어떻게 우리를 공격하는지 잘 알아야 그것에 대처를 하고 물리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고,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도를 해야 하지요. 기도하지 않고는 그런 능력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 14:38절상)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깨어 기도하며 주님의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유혹이 오는지도 모르다가 마귀의 공격에 쓰러지고 맙니다. 2) 우리는 무관심, 안일함으로부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실 무관심이나 안일함이 죄라는 것조차 모르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적으로 잠든 사람, 어두움에 있는 사람이 무관심하거나 안일함으로 그냥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육신적으로는 살아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자라고 사데 교회를 책망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민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른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1절하-3)고 하셨습니다. 사데 교회 교인들이 그냥 그렇게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하고, 안일하게 신앙생활하였기에, 그 자체가 죄를 짓는 것이라서 회개하라고 주님께서 꾸짖으셨습니다. 깨어나라고 하십니다. 3) 우리는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교회 안에서 조차 거짓 선생들이 이단을 가르치거나 조장하여 교회와 교인들을 힘들게 하니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3-4)고 경고했습니다. 4) 주님 재림이 가까웠으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실 15장 강해할 때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거룩하고 신실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른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43절상)고 하셨습니다. 그 날이 도적 같이 온다고 하였기에 더욱 깨어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도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능력 있는 삶을 살려면 “믿음에 굳게 서야(stand firm in the faith)” 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단순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즉 복음의 내용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싸움을 할 수 있는 근간이 되는 믿음은 진리의 말씀을 믿는 것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stand firm in one spirit)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the faith of the gospel)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빌 1:27-28절상)고 하였습니다. 올바른 교리를 믿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탄, 마귀는 우리의 구원을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가 믿는 교리를 흔들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며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하여 잘못된 믿음의 행동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바로 믿는 믿음에 굳게 서라고, 흔들리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도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데살후 2:15)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과 사건들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능력 있는 삶을 살려면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3절에 “남자 답게(be men of courage or act like men)”라고 우리 말에는 부사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원어에서는 동사형으로 남자 답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여기 “남자” 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보통 해석은 남성으로 보는 것이며 또 다른 해석은 성숙한 어른으로 보는 것입니다. 둘 다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 다음에 나오는 “강건하라”는 동사와 연결해서 생각한다면 우리 말 번역처럼 강건한 남자답게 담대하라는 의미를 중복해서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성숙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의미로만 보는 경우입니다. 저는 후자가 더 좋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원어에 두 단어가 따로 따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즉 성숙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미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14장 20절에서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였고, 사랑장에서도 성숙함이 사랑의 표시임을 강조하였었습니다(13:11). 그 동안도 바울은 그들에게 교리 문제나, 영적 통찰력에 있어서나,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도덕적으로 순결함 등 모든 선한 일에 성장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베드로도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절상)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우리 자녀들이 잘 먹고 운동하면서 육체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소화시켜야 하겠지요. 운동도 해야 하겠지요. 영적으로 미숙한 어린 아이가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어른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바울이 명령하는 것입니다. 제발 철이 들고 어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능력 있는 삶을 살려면 강건해야 합니다. 13절 마지막에 “강건하여라(be strong)”고 하였습니다. 이 단어가 신약 성경에 쓰일 때에는 주로 내적인 강건함을 의미했습니다. 속 사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또 본문에서 이 단어는 수동형으로 쓰였습니다. 우리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주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양보하는 것입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하였으며,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딤후 2:1) 하였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지금 강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상당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 교만이 그로 하여금 마귀의 놀이개가 되게 하여 그를 쓰러뜨릴 것입니다. 바울은 서 있다고 생각할 때에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0:12). 오히려 자신이 약할 때 강하다 진다고 했습니다(고후 12:10).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주님의 은혜로 강해지더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심령이 주님의 은혜와 그 능력으로 강하여져야 육체를 이기며,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은 이 부분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 속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섯째로, 우리가 능력 있는 삶을 살려면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14절에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를 다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려면 깨어 있어야 하며, 진리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며, 성숙한 것이며, 속 사람이 강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가장 균형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니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사랑으로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이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7-8)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사랑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허락하신 한없는 사랑을 본받아 행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주일에 16장 마지막 단락에서 바울이 몇 몇 사람들을 예로 들고 있어서 더 자세히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바울이 우리에게 들려 주는 마지막 권면은 전쟁터에서 담대하고 용기 있게 전투를 잘 하는 능력 있는 영적 군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능력 있는 삶을 살기 원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전혀 해당이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 짧은 인생, 한번 주어지는 인생 능력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명령입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이 짧은 구절을 외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영적으로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방심하거나 안일한 삶이 아니기 바랍니다. 늘 사탄, 마귀의 궤계를 경계할 수 있도록 기도로, 말씀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기초를 든든히 해서, 점점 성숙해져 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힘으로 강건하여지기 바랍니다. 아니 모든 일을 사랑의 동기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무슨 동기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을 대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사랑이 충만하여 그 사랑으로 모든 일을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능력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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