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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11-11 (월) 11:5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47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고후 2:12-17)


여러분은 어떤지 몰라도 제가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모양도 예쁘고 특이하지만, 사실은 그윽한 향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모양이 예뻐도 향기가 좋지 않거나, 아예 향기가 없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꽃의 존재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향기로운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향수를 사용하는 이유는 향기로운 좋은 냄새를 피우기 위해서 이거나, 아니면 나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실 나쁜 냄새가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까? 특히 생선이 상할 때 나는 냄새나 위장이 비어있거나 속병이 있어서 나는 구강악취는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코로 맡는 냄새가 있는가 하면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가 있습니다. 향수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에게 느껴지는 냄새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풍기는 분위기라고 할까, 아니면 사귀며 대화를 해보고 또 그가 사는 모습을 보니 매력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좋은 냄새, 향기가 나는 이런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이 가까이 합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냄새를 느끼게 하는 사람 주위에는 별로 사람이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어떻게 그런 사람을 좋아하여 가까이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자신과 그의 동역자들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14절).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면 그분을 아는 냄새를 여러분 주위에 하나님께서 나타내십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믿고 경험적으로 알 때에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인격을 닮아갈 때에 하나님 앞에서의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15절).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문제 때문에 낙심되어 있던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품어내는 향기 때문에 위로를 받고, 다시 복음을 위하여 힘을 내게 됩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12-13절)고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에 갔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많이 주었습니다. 그 곳 사람들의 마음 문이 열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편지를 가지고 가서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가져와야 할 디도를 아직 만나지 못하여 심령이 편치 않아 그만 드로아를 떠나 마게도냐로 갔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야말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애쓰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할 문을 주께서 열어 주셔서 마땅히 더 전해야 하는데 디도를 만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중도에서 그만두고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에게 고린도교회가 얼마나 중요하였는지, 그의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믿음이 성숙하고, 복음의 열정이 있어서 주님으로부터 잘 쓰임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도 어떤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침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 같은 영적 지도자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깊숙이 빠져들어가 그 문제가 자기 문제인양, 자기 책임인양 생각하게 되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게 낙심을 하는 것입니다. 아마 바울은 ‘내가 여기 드로아에서 이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 무슨 소용이 있냐?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한 고린도교회도 이 모양인데 여기라고 별 수 있겠느냐’라고 사탄, 마귀가 속삭인 것 같습니다.
   사실 목회를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말씀을 전해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분들을 볼 때, 아니 오히려 더 후퇴할 때 목회의 실패감이 찾아옵니다. 정말 열심히 기도해 주고, 사랑을 퍼부어도 상황이 더 좋지 않게 될 때 낙심하게 됩니다. ‘나는 안되나 보다’는 생각으로 그만 복음의 열정이, 목회의 열정이 식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바울을 그냥 그렇게 낙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사탄, 마귀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바울은 감사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4절)고 하였습니다. 원어에 의하면 이 문장에서 그러나(But)로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단어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고린도교회가 어떤 상태인지 소식을 전해줄 디도를 만나지 못해 잠시 낙심은 되었으나 곧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주셨는데, 그것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기게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구절의 바울의 문체는 마치 당시 로마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로마시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개선 행진의 분위기를 비유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 때 로마시에는 향내가 진동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비록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중도에서 떠났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 일하시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바울이 깨달은 것은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알게 된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그리스도의 향기를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진실로 믿는 자들에게는 이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 냄새를 맡고서 믿는 자들이 주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스스로 목사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목사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목사라고 스스로 말하는데도 목사 냄새가 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가짜 목사입니다. 삯꾼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심령이 편치 못해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향기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꽃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이 향기만 맡아도 무슨 꽃인지 알아 내듯이, 향수를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향수를 맡기만 해도 무슨 상품인지 알아 내듯이 말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서로 비슷한 냄새가 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 냄새를 맡고서 ‘그 안에 무엇이 있구나’ 하고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향기를 맡고서 너무 좋아서 나도 그런 향기를 품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인격,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연약해서 때로 실수는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계시며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을 상대하고 살기에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자기 성질을 부리다가도 이게 아닌데, 하나님이 보고 계신데 하고 멈추면서 태도를 바꿉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15-16절)라고 한 것입니다. 즉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그렇게 싸우기나 하고 이기적으로 자기 것을 챙기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자랑하면서 서로 경쟁하면 결코 좋은 냄새가 될 수가 없습니다. 사도의 권위를 부정하고 대항하면서, 부도덕한 음행을 저지른 사람 때문에 징계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고 다투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사망에 이르는 썩은 냄새가 될 수도 있고 생명에 이르는 향기로운 냄새도 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런 냄새를 맡고는 ‘그러니 내가 왜 교회를 나가서 서로 잘났다고 그렇게 싸우는 하나님을 믿어’하면서 더욱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진리 때문에 그러는가 보다, 죄인들을 바로잡고 회개로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나 보다 여기면 생명에 이르는 냄새를 피우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바울이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날 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풍겨난 것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17절)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말씀에 심리학이나 다원주의 사상을 넣듯이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했습니다. 여기 ‘혼잡하게 하다’는 원어의 뜻은 불순물을 섞어서 양을 늘리는 것을 말합니다. 순수한 포도주에 물을 타거나 올리브 기름에 다른 기름을 섞어 양을 늘려서 파는 사람들처럼, 당시에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인간적인 철학, 사상, 특히 유대주의나 영지주의를 섞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람들이 거기에 넘어가는 이유는 불신자들의 생각에 잘 들어맞고, 융통성이 있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배타주의가 싫은 것입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라도 괜찮은 것이니 사람들에게 잘 통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동역자들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불순물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그 어떤 것도 들어가지 않는,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계시의 말씀 그대로 전한다고 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 지식은 전혀 그 성질이 다릅니다. 이 세상 지식은 인간의 경험이나 생각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것이며,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세상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평가되고 판단하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의 이론인 진화론이나 Big Bang Theory 를 가르친다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세상 지식을 많이 알아야 유식하다고 인정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지식은 사람을 바꾸지 못합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사람을 치료하고,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다른 것을 섞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찾으려면 가짜를 먹게 되고 병균이 들어가 배탈이 나서 병들고 죽고 맙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말씀을 먹어야 세상을 이기는 힘을, 죄를 이기는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복음서에 보면 한번은 죄 많은 여인이 주님 앞에 값비싼 향수를 가지고 나아와 주님의 머리에 붓고, 눈물로 그의 발을 씻기며 다음 날 있을 주님의 죽음을 애도하고 사랑을 나타냈습니다(마 26:6-11; 막 14:3-8; 요 12:2-8). 그런 모습이 주님에게 향기로 느껴졌습니다. 비록 그 향수로 인해 그 집안이 향기가 가득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그녀의 행동 자체가 향기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행동이 함께 증거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여인의 회개와 헌신, 주님을 향한 사랑이 바로 복음의 향기였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냄새가 납니까? 어떤 향기가 풍깁니까? 너무 그 냄새가 좋아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사랑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좋지 않은 냄새가 나서 주위 사람들을 오히려 쫓아냅니까? 목회를 하면서 가장 기쁠 때가 저의 설교를 듣거나, 제자훈련 성경공부 등으로 말씀을 배우고 먹으며 사랑을 받은 성도들에게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날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피울 때입니다. 우리 주님의 인격이, 성품이 드러날 때입니다. 변화를 받아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면서 죄를 미워하기에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용납하며, 사랑하려고 힘쓸 때입니다. 청결한 양심으로 정직하게 사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본이 되는 삶을 살며 사랑을 받고 살 때 입니다. 그럴 때는 비록 목회가 힘들어도 더욱 열정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려면 주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영적 교제를 통하여 주님을 속속들이 알아야 합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먹고, 잘 소화시켜 삶에서 말씀 따라 사는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는 사실 모든 믿는 사람들의 책임이요,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러면 주위에 그 냄새를 맡고 우리 하나님께로 나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 냄새를, 그 향기를 맡고 싶어서 찾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냄새를 풍기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품어내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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