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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8-22 (월) 07:0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24    
가롯 유다(요 13:18-30)
아마도 배신자 혹은 배반자(traitor, betrayer)라는 말만큼 듣기 싫은 말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인관계에서 신의를 저버리거나, 자기 나라 혹은 자기 부모를 배신하는, 배반하는 사람만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나라를 배신한 사람이 붙잡히면 어느 나라든 예외 없이 사형에 처할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도 대표적인 사람이 일본에게 우리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일 것입니다.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으로서 일하면서 한일합방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친일 매국노의 괴수라는 칭호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성경에도 배신자들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삼하 15:10-13)이나 솔로몬 왕을 배신하고 나라를 둘로 나뉘게 한 여로보암(왕상 11장 26절 이하)등 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배신자라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롯 유다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3년 동안 옆에서 주님께서 베푸신 기적들과 주옥 같은 가르침들을 듣고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대제사장들에게 은전 삼십에 팔아 넘겨 죽음으로 인도한 장본인입니다(마 26:14-16).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를 가리켜 “차라리 나지 않았더면 제게 좋을 뻔한 사람”(막 14:21), “멸망의 자식”(요 17:12)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이 가롯 유다라는 사람의 배경에 대하여 별로 이야기가 없고, 다만 그의 아버지가 가롯 시몬이라는 것만 말하고 있습니다(요 6:71, 13:2,26). 가롯은 그가 자란 고향을 말하는 것으로 유다 헤브론 남쪽 지역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12제자 가운데 갈릴리 사람이 아닌 것은 이 유다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이 돈 궤를 그에게 맡겨서 회계를 보도록 한 것은 그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21절)에 하실 때에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애초부터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늘 예수님께서 로마 제국을 뒤엎고 이스라엘을 독립시켜서 왕으로 임하시면, 자신은 높은 자리에 앉아 권력을 누릴 것을 꿈꾸던 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소원이 들어질 것 같지 않아서 주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이 가롯 유다의 위장된 모습을 벗기시는 예수님을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둔, 바로 전 날 어느 다락방에서 첫 성만찬을 함께 하면서 12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이유는 그들도 주님을 본받아 서로 발을 씻기도록 하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 18절에 12제자 다는 아니라고 하시면서 시편 41편 9절,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는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그 성경 예언이 성취가 된다고 하십니다. 발꿈치를 든다는 말은 노새가 주인을 뒷발길질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아주 가까운 사람이 배반했을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아마도 시편에서는 다윗이 그의 신복 아히도벨이 그를 반역한 것을 슬퍼하며 고백하는 말씀이었으나, 그처럼 예수님도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뒷발길질을 당할 것을 예언한 말씀대로 된다는 뜻입니다.
18절에서 다는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19-20절에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가롯 유다는 그렇지 않고, 겉으로는 주님을 따르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주님을 전혀 믿지 않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아니 배반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가롯 유다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께서 robot를 움직이듯이 예수님을 팔아 넘겨 죽게 하시는 데에 사용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행동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으로 나중에 자살을 하게 됩니다. 다만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다 미리 알고 계셨던 것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21절)고 하신 것입니다. 3년 동안 데리고 있던 제자 중 하나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정말 마음이 민망하였습니다. 요동쳤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양이 아니라, 이리였습니다. 가롯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께서 3년 동안 하신 모든 일을 충분히 다 파괴시킬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만 배반할 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까지도 배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선포는 가롯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동시에 나중에 제자들에게 주님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불신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어떤 큰 일을 당하기 전에 반드시 알게 하신다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교훈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우리들이 불안할 때가 있어도 우리 주님은 다 알고 계시며, 주님께서 정말 어려운 일 같으면 미리 피하게 해 주셔서 이 세상을 믿음으로 끝까지 살아갈 수 있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24절에 보면 베드로가 그 성격대로 궁금하여 바로 예수의 품에 안겨 누워있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요한에게 머리 짓을 하여 그가 누군지 알아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요한이 예수께 묻습니다(25절). 예수님께서 대답을 하시는데 떡 한 조각을 포도주에 찍어다 주는 자가 바로 배반자인데 하시면서 가롯 유다에게 주십니다(26절). 아마 요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씀하시고 행하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아니면 다들 난리가 났을 텐데,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27절)고 가롯 유다에게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그 말 뜻을 모르고 다만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니까 무슨 쓸 물건을 사라고 하시던지, 가난한 자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시는 줄 생각하였습니다(28-29절).
이“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가롯 유다는 정말 회개하고 울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이미 예수님에게 실망을 했고, 예수님보다 자기의 뜻이 더 옳다고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7절을 보면 예수님에게 떡을 받는 순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사도 요한은 이 사건이 있은 한참 후에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언제 가롯 유다의 마음에 마귀가 들어갔을까 생각을 해 보니, 아무래도 예수님의 떡을 받는 순간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그 순간 가롯 유다의 표정이 달라져 보였던 것입니다. 무엇인가 마음에 결심이 선 것이었습니다.
인상 깊은 것은 예수님은 가롯 유다에게 끝까지 신사적으로 대하심으로 그를 격동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악한 자들을 흥분하게 하고 격동하게 하는 것이 정의롭게 보일지 몰라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유다는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게 됩니다. 곧 예수님을 팔기 위하여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30절). 아마 요한에게는 그가 밖을 나가는 순간이 한 밤 중이어서 섬뜩했을 것입니다. 결국 가롯 유다는 그 길로 바로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고발하고, 잠시 후 로마군인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는 빛의 아들, 낮의 아들이 아니라 어두움의 아들, 밤의 아들로 인생을 마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다 나름대로 용도가 있다고 보시고, 하나님의 섭리를 아시고 대적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악한 자가 결코 하나님 자녀들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하나님 자녀들을 실컷 연단시켜 놓고 자기는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놀라운 특권과 기회를 놓쳐버린 역사적인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과 3년을 동거동락하면서 말씀을 배웠습니다. 주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기회도 너무 많았습니다. 수많은 기적들을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이 주신 가벼운 멍에를 지고 따르라는 초청을 거절하고, 그만 죄성에 자신을 내어놓고 말았습니다. 마귀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주신 기회들, 놀라운 특권들을 놓치지 말고 잘 붙드시기 바랍니다. 죄성에, 혹은 마귀들에게 자신을 내어드리지 말고, 성령님께 내어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멍에는 결코 우리가 질 수 없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질만한 가벼운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동행해 주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둘째로, 그는 돈을 사랑하다가 망한 사람입니다. 제자들이 그에게 회계를 맡긴 정확한 이유가 성경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가 하겠다고 해서 맡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제자들은 그를 단순히 믿었습니다. 돈에 대해서 만큼은 머리가 잘 돌아가고 계산이 무척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삼백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는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서부터 발끝에 부을 때에도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자고 했지만, 정말 그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중에 얼마를 자기 주머니에 챙길 수 있어서 그랬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예수님을 팔아 챙긴 은전 30은 백 데나리온 이하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준 것입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라고 하였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악하게 되어 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탄이 가장 잘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물론 우리가 생활하는데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을 좋아하는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을 가지고 우리가 얼마든지 선한 일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돈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 욕심을 내는 것이, 즉 탐욕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돈을 다스려야 하는데, 돈이 여러분을 다스리게 되는 상황이 되면 악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돈에 대하여 자유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뜻을 고집하다가 망한 사람입니다. 영적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예수님이 언제 로마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 나라를 해방시켜서 독립국가가 되어 자신이 왕되신 주님 옆에서 권력을 누리며 살기 원하는 그 뜻을 고집하다가 멸망의 길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혹시 입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 자신의 뜻을 고집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고 하면서, 세상에서는 하나님 뜻보다 우리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갈 때가 많지 않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뜻 앞에 우리 자신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넷째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도 가롯 유다와 같은 사탄이, 마귀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도 가르쳐 주셨듯이 말입니다(마 13:24-30, 36-43). 양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뿔 달린 염소도 있습니다. 아니 가롯 유다처럼 양의 가면을 쓴 이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위선적인, 가식적인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전혀 성령의 열매를 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지옥 불에 던져짐을 당할 것입니다(요 15:6).
다섯째,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에 회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거듭 경고를 받았지만 회개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사실 13장에서 예수님은 가롯 유다에게 직접, 간접적으로 다섯 번이나 경고를 했습니다. 제자들 발을 씻길 때에 베드로에게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10절)고 하셨습니다. 가롯 유다를 향한 간접적인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앞서 말씀드렸듯이 18절에서도 시편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두 번째 경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21절에서도, 26절에서도, 또 27절에서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마지막 경고를 했습니다. 그는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고 주님을 붙들고 울었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후회하고 자살을 했는데 이미 늦었습니다(마 27:5).
우리들도 주님께서 주시는 경고를 무시하지 말고, 늘 경고를 받을 때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상적인 삶의 본질을 따라 살지 않고 거꾸로 비정상적인 삶을 살면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더욱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진실로 회개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후회하는 것과 회개하는 것은 다릅니다. 후회하고 반성한 후에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완악하고 교만한, 고집스러운 마음들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다 부수어 버리고 돌아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롯 유다처럼 악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그 뜻을 막지 못합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제자가 주님을 배신하고, 팔아 넘겨, 십자가에 죽게 하는 가장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어도 우리 주님께서는 승리하셨습니다. 잠시 사탄, 마귀들이 이긴 것처럼 보였지만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패배시키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롯 유다의 배신을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셨습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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