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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07-19 (월) 03:5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18    
[7/18/10] 부흥은 곧 전도로 나타납니다
부흥은 곧 전도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4:27-42)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늘 부흥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건물을 새로 짓거나 혹은 내부를 새로 단장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된 예배를 드리며, 바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면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새롭게 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이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되어 새롭게 변화를 받게 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부흥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흥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부흥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실 때에는 온 마음과 생명을 다하여 그 축복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에 그런 기회가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부흥의 불꽃은 끄기는 쉽지, 일으키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우상을 끌어들이고, 세상을 끌어들여서 예루살렘의 부흥의 불길을 꺼버렸을 때 그것을 도로 살리기 위하여 무려 70년의 포로생활이 필요했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희생을 치르고서야 가까스로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통하여 부흥이 조금씩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랬다가 다시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완전히 부흥의 불길이 꺼져버렸습니다.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부흥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또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선택 받은 자들에게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 ‘네가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것을 달라고 했을 것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선물은 바로 생수였습니다. 물이 흔한 우리 문화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막 지대의 나라에서 생수가 터진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문제는 당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자손이지만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그랬을 때 주님께서는 이 축복을 전혀 엉뚱한 동네인 사마리아에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사마리아는 절대로 부흥이 일어날 수 없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버림 받은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 영적으로 죽은 도시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창녀와 같은 비천한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엄청난 위로를 받습니다. 이 여인이 거룩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가장 타락한 여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로 작정하시니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그녀 자신뿐 아니라, 온 동네에 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연약한 우리들에게 부흥이 임하면, 반드시 이웃에게, 속한 공동체에 부흥의 불꽃이 번지게 되어 있습니다. 전염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령에 부흥이 일어나면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전도를 하게 되어 있고, 전도의 결과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우리 교회에도 놀라운 부흥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주님을 만나 은혜를 받고, 그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된 이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전도합니다(28절).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29절)고 전합니다. “와 보라”!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전도의 가장 기초적인 이 한 마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전도할 때에 사용해야 될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중요합니다. 추상적인 진리가 아닌, 구체적이고도 주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누구나 다 믿기만 하면 체험할 수 있는 확실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와 보라”는 말은 전도의 가장 기초적이고도 확실한 방법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까 자신의 목마른 갈증이 해결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만나기 싫어하는 동네 사람들에게 갔습니다. 장벽을 넘어서서 말입니다. 복음의 능력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생수를 체험한 후에는 과거에 상종하기도 싫었던 사람들, 만나기 싫어했던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예수님을 만나 보라고, 자신의 과거를 다 아시고 계시니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들도 다 그리스도가, 생수가 필요한 죄인들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추측하고 적극적으로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말씀에 적극적으로 반응을 했습니다. 동네에서 나아와 수가성 우물가 예수님에게로 왔습니다(30절). 물론 오기 전에 이 여인의 증거를, 간증을 듣고 그 동네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39절).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처럼 허물 많고 부족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을까요? 아셔야 할 것은 천사들에게는 변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즉 변화된 우리의 모습이 진정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사마리아 동네 사람들이 우물가로 나아와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자기들과 함께 있기를 청하여 이틀을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말씀을 하시니 믿는 자가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40-41절). 사마리아 사람들의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오늘 바쁜 일이 있으니까 다음 기회에 주님을 만나서 말씀을 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말을 듣자마자 예수께로 나아와 말씀을 듣기 원했고, 들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42절) 하였습니다. 여기 그들이 고백한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라고 한 말은 유대인들만의 구주가 아닌 사마리아나 이방인이나 모든 사람들의 구주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메시아로만 알고 있던 오해와 편견이 다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즉, 그들은 주님에 대하여 증거하며, 자신의 체험을 간증해준 이 여인을 주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주목했습니다. 이 여인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자기들이 직접 예수님을 만나서 확인한 진리로 인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전도자의 간증, 증거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대상자가 주님을 직접 개인적으로 만나서 말씀을 듣고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간증과 삶의 변화를 듣고 놀라와 하는 것으로 그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은 다른 사람들을 통한 대리 만족이 아닙니다. 그들이 만나고 경험한 주님을 자신들이 직접 만나고 경험하는 일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됨으로 신앙생활하면서 그 여인이 시험거리가 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믿음이 너무 약해서, 아니 어쩌면 주님을, 진리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경험하지 못해서 전도를 한 교인이나 혹은 다른 교인들 때문에 시험에 들어 교회조차 나오지 않거나 다니다가 그만 두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탄의 역사지요. 그러나 자신의 영혼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안다면 다른 사람을 핑계로 하나님을 믿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자기 동네에 들어가서 전도하는 동안에 제자들과 예수님과의 대화 내용이 31절부터 38절까지 나옵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이 여인이 우물가에서 대화하는 동안에 먹을 것을 구해 와서 주님과 함께 먹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잡수시라고 권했습니다(31절). 그러나 주님에게는 다른 양식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십니다(32절). 이 말의 영적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누가 주님께 먹을 것을 갖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먹어야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이며, 나머지 것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에 생각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탄도 그렇게, 먹는 것을 가지고 40일 금식하셔서 굶주린 주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말씀이 양식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4절)고 설명하십니다. 주님의 양식은 먹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처참한 고통인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감당하신 것이었습니다(마 26:39). 이것이 주님께서 사는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구원을 받도록 인도하는 일이 우리의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믿고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을 보며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도 한 비천한 여인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음식을 먹지 않으셨지만 이미 배부르셔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먹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영혼의 만족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음식을 잘 만들어 자식들에게 먹입니다. 자식들이 너무 잘 먹으면 어머니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 만족감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너무 기쁜 일이 있을 때에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먹는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양식은 바로 이것입니다. 먹는 양식을 많이 먹어서 누리는 기쁨보다도, 남들에게 먹여주고 난 다음 그것을 바라보면서 흐뭇해 하는 것, 복음으로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기쁨입니다(36절하).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왔구나. 세상에서 완전히 버림 받은 영혼이 저렇게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는 것을 보니까 밥을 먹지 않아도 나에게는 참 기쁨이 있노라!’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기쁨입니다(참고: 눅 15장). 부페 식당에 가서 배부르게 먹고 기뻐하는 것은 돼지 기쁨입니다. 만물의 영장이요, 생각하는 갈대로서 그런 형이하학적인 기쁨보다, 우리에게 이런 높은 수준의 기쁨, 형이상학적인 기쁨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덧붙여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35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참 답답하다. 주위를 둘러보라. 저렇게 추수할 것들이 많이 있는데, 너희들은 밤낮 너희들끼리만 모여서 먹고 즐기면서 서로 잘났다고 하고, 누구의 잘잘못만 가리고 있으니 참 한심하다. 정말 너희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건져내는 것이다. 너희들이 나를 따라다닌 지도 꽤 되는데, 몇 명이나 나에게 데리고 왔느냐?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가서 많은 영혼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이 나를 만나지 않았느냐? 너희들 눈에는 아직 때가 안 되었다고 넉 달이 더 있어야 하겠다고 핑계만 대고 있을 것이냐? 부끄럽지 않으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그 삯을 이미 주었다고 하십니다(36절상).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먼저 받은 삯이 무엇입니까? 우선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가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일을 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놀라운 축복이요, 상급입니다. 처음에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나타납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씨를 뿌렸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추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37-38절). 왜냐하면 씨를 뿌리는 자는 뿌린 대로 복되고, 추수를 하는 사람들은 추수를 하는 사람대로 복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다 하나님의 일이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나가면 반드시 이 추수의 계절은 계속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며, 씨를 뿌리는 일을 계속 해야 합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때로는 거두기도 하지요. 그것이 곧 부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선 지난 주일 말씀처럼 우리 개개인이 참된 예배를 통하여 부흥을 체험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부흥을 사모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에게 부흥이 임하면 나아가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당연한 일입니다. 부흥은 곧 전도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생수를 체험한 후 여러분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여러분이 체험한 간증과 복음을 전했나요? 혹시 한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닙니까? 물론 전도 대상자가 주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전할 뿐입니다. “와 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선한 행실입니다. 그러면 그들도 우리 안의 예수님을, 생수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도 직접 예수님에게 나아와 복음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추수할 알곡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미 어떤 분들이 씨를 뿌려 놓았기에 가서 거두기만 해도 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씨를 뿌릴 수도 있습니다. 그 자체가 축복이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핑계도 대지 말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부지런히 씨를 뿌리고, 거두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일로 놀라운 기쁨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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