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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9-08-07 (금) 02:5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72    
[8/5/09] 전도서 강해 3
인생의 참된 행복은 어디에 (전도서 2:1-11)
우리는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몇 번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는데 지나가 버린 인생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남은 시간을, 주어진 인생을 보람있게, 값지고 아름답게 보내기를 원할 것입니다. 목숨이 여러 개 있어서 내 마음대로 살다가 일이 잘 안 풀리면 죽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만, 우리 목숨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밖에 없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아름답고 보람있게 보낼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을 전도서가 주고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는 인생들에게 오늘 본문은 적어도 이런 삶은 아니라는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꼬마 아이들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를 가면 정신을 못차립니다. 이것도 가지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니 솔직한 마음으로 장난감 가게 전체를 다 사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난감을 전부 가진다고 해서 모두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마치 고급 부페 식당에 가서 음식들이 아무리 맛있어 보여서 다 흡족하게 먹고 싶어도 어느 정도 먹고 난 후에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욕심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면 너무나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문제는 우리 몸이 다 감당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자 솔로몬 왕은 시험적으로 자신의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것도 다 헛되더라는 말입니다(1절). 과연 사람이 시험적으로 낙을 누릴 수 있을까요? 인생이 하나 밖에 없는데 시험적으로 낙을 누리기 위하여 욕심을 따라 살아볼 만큼 길다고 생각합니까? 나의 낙을 누리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시험적으로 해 보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인생인 것입니다. 솔로몬 왕도 진정한 가지와 행복을 찾기 위하여 인생을 많이 방황해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엄청난 시간과 정력의 낭비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그는 너무 늦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지금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너무 오랫동안 방황하며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아왔다면 이런 진리를 찾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쫓아 사는 사람은 두 가지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는 우리 인생이 유한하다는 사실입니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허비한 인생을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인생은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인생은 다른 사람과 나눌 때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육체의 쾌락을 좇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짓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고 합니다. 왜 웃음을 논하여 미친 짓이라고 합니까? 웃음이 삶의 목적이 되어 사는 삶은 짐승 같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짐승이 행복을 느끼며 웃을만한 때는 실컷 먹은 후에 자기를 때리는 사람도 없고 부리는 사람도 없어서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아무런 고통,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있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생활 무능력자나 정신 이상자일 것입니다. 웃음을, 희락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아는 사람은 그 웃음을 맛보고 살지만, 웃음이나 희락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될 때에는 짐승 같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는 솔로몬이 경험해본 바입니다(3절). 마음은 지혜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육체는 술로 즐겁게 해보려고 했다고 합니다. 즉 ‘생각 따로, 행동 따로’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세상 사람들의 대표적인 생각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생각, 마음일 뿐, 행동은 아무 것도 아니기에 행동은 방탕하게 해도 마음만 아니면 상관이 없다는 식입니다. 예를 들면 한 여성이 돈을 벌기 위해 술집에서 일하면서 술 팔고 몸 팔면서도 마음만 순결을 유지하면 된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죄의 습관이 몸에 배고, 중독이 되어 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아니 성령님의 도움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우울증에 한번 걸리면 어떻게 됩니까? 불안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써도 몸이 저절로 불안해집니다. 그것이 치료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생각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도 적습니다. 그래서 생각과 행동이 일치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민을 하는 것도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순입니다. 생각은 했는데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런 생활을 오래한 것 같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면 지혜로운 모습을 가지다가도, 육체의 쾌락을 일삼는 사람을 만나면 거기에 어울리는 것입니다. 즉 자신 스스로의 생각보다도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사는 인생을 말합니다. 즉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주는 격이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자기 인생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그제야 자기 인생을 찾겠노라고 탈선을 시도하는데, 그것이 인생을 되찾는 것이 아니고 더욱 망치는 길이지요.
솔로몬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는지 사업을 크게 늘여갑니다(4-7절). 그러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을 엄청나게 합니다. 그랬더니 재물도, 소유도 많아졌습니다. 보물도 많이 쌓아둡니다(8절). 정말 엄청난 부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인생의 만족을 주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한도 끝도 없더라는 뜻입니다. 하나님보다 재물을, 물질을 더 사랑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8절하) 합니다. 열왕기상 11장 3절에 의하면 700명의 아내들과 300명의 첩을 두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정욕을 채우면 행복해 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정욕을 채우는 것이, sex 가 참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더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오히려 솔로몬은 그 많은 이방인 아내들의 영향을 받아 이방신들을 왕궁에 들이게 되어 영향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결국 나라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았습니까?
솔로몬은 이렇게 안목의 정욕을 따라, 쾌락을 따라, 마음의 희락을 따라 살아 보았다고 합니다(10절). 자신의 수고로 얻은 분복으로 알면서 세월을 낭비하고 났더니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셨는데,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11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성경 말씀이 진리입니까?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사람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려야 그 사람이 진실로 행복을 느끼고 삽니다. 그렇지 않고 이 영혼이 세상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지배를 받아 그렇게 눈에 보이는 대로, 욕망을 따라 살면 아무리 돈과 명예와 sex 를 해도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복은 이 영혼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영혼이 건강한 사람,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게 되고, 이런 사람들이 세상의 환경들을, 주어진 돈이나 학식이나 명예를 제대로,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 바울은 부할 때에도 궁핍할 때에도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빌 4:11-12). 사람이 돈이 많으면 거만하기 쉽고 가난하면 비굴해 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돈이 많아도 거만해지지 않았고,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인생의 가치를 거기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고 거기에 가치를 두었기에 그에게 돈이나 명예는 부차적인 의미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하나님 나라와 의에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복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려면 먼저 죄가 해결되어야 하고, 영혼이 치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가장 먼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그 독생자를 주실만큼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횝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영혼이 치료가 되면 자기 인생이 얼마나 소중하고, 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가 얼마나 귀한지 깨닫기 때문에 인생을 낭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인생도 소중한 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이 욕망을 좇는 무가치한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영원한 것들에 가치를 두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살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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