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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9-09-16 (수) 03:3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172    
[9/13/09] 하나님 중심의 신앙
하나님 중심의 신앙 (출 32:1-10)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속내라고 말합니다. 속 마음, 즉 어떤 사람의 참 모습을 알 수 있다면 대인관계가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생활합니다. 그러다가 때로 어떤 사건이나 환경에 처해지면 가면이 벗겨지고 그 사람의 참 모습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에도 위장된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위기에 처하거나 혹은 어떤 환경에서 그 사람 신앙의 참 모습이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라면서도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경에 근거한 참된 신앙의 모습이 없다면 그냥 교인일 뿐이지, 성도는 아닙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가진 가짜 신앙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건을 통하여 그 백성들에 대하여 심한 좌절감을 느끼시면서 더 이상 그들과는 대화로 통할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다 멸하려 하십니다. 도저히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계획을 이룰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본문의 문맥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열 가지 재앙에서 구원하시고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며 탈출하게 하여 광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광야생활 중에 만나와 메추라기로, 또 반석에서 물을 내심으로 스스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나타내시면서 시내 산까지 함께 오셨을 때에, 그들은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가르쳐 주시고, 그들에게 언약을 맺겠느냐고 하셨을 때에 말로는 기꺼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겠노라고 약속을 했던 백성들이었습니다(출 24:3). 그러나 그들에게 40일 정도의 날들의 여유가 주어졌을 때 그들은 너무나도 빨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가진 신앙의 가면을 벗어낸 진짜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의 속내는 기회만 있으면 자기 중심의 삶으로, 자기 방식대로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애굽의 우상숭배 사상이 지배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1절).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산에 올라간 지 40일이 가까이 되었는데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 40일은 모세 자신에게도 필요한 시간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든지 하나씩 하나씩 다져가면서 하십니다. 정신없이 그들을 몰아가지 않으십니다. 40일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정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일을 넘기지 못하고 자신들의 속내를, 패역한 본성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 익숙한 신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고 그저 말씀하시는 여호와가 아니었습니다. 말은 못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송아지 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을 인도한 모세가 눈 앞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신앙생활 한 것은 모세 때문이었다는 결론을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았고, 모세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니까 안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모세가 없습니다. 또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옛날 애굽에서 익숙해 있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즉 그들에게 익숙한 신은 애굽의 수많은 잡신이었지, 인격적으로 말씀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의 신들은 죽은, 침묵하는 신들이었기에 자기들이 어떻게 하든지 상관하지 않는 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자기들의 삶을 간섭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따라왔지만, 마음으로 완전히 동의하고 생각과 가치관 자체를 바꾸고 따라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사람의 겉 모습은 빨리 변하지만, 그 속에 있는 생각이나 가치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교만하고 고집이 센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책망을 듣습니다(9절). 왜 그들이 40일을 기다리지 못했을까요? 여전히 자기 중심적인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다면 40일은 참으로 중요한 준비 기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의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40일은 너무 긴 시간이었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에는 너무나도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신앙은 결국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자기 중심의 신앙입니다. 자기 중심의 신앙이 갖고 있는 문제는 실제로는 하나님을 잘 모르면서 스스로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그런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자기 중심의 신앙생활, 하나님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너무나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하여, 얼마든지 인간적으로,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며 행동하는 교만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본문에서 안타까운 것은 아론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역한 일을 하기 전에 아론을 찾아와서 눈에 보이는 한 신을 만들 것을 요구하였습니다(2-4절). 놀라운 것은 아론이 그들의 요구를 책망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송아지 신을 만드는데 협조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대제사장에 임명될 아론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 분명히 그가 알고 있는 십계명의 제 1 계명과 2 계명을 어기는 큰 죄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정확한 이유를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기에 알 수 없지만, 추측해 보자면 아론은 지도자로서 존경받고 있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지금 그들의 제안을 거부하면 그들이 자기에게 완전히 등을 돌릴텐데 그러면 자기가 무엇이 되나 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론이 그 백성들의 생각에 동의를 했거나, 자기도 하나님을 버리려고 그처럼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비록 모세가 중보기도를 드려서 그 목숨을 건졌다 하더라도 대제사장으로는 쓰임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론도 모세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속히 내려오지를 않고, 백성들은 계속 찾아와서 그런 요구를 하니까 40일 가까이 되어서 더 이상 그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끝까지 모세를 기다리며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그들의 마음이나 붙잡는 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는 혼자서 버티기에 너무나도 약했기에 후자를 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아론은 사람 편에 치우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충실했습니다. 사람들이 돌로 치려고 해도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욕을 먹어도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했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도록 울면서 기도했던 지도자였습니다(11절 이하). 그러나 아론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말을 잘 못하는 모세의 말씀 사역에 동참하여, 대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말씀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 중심의 신앙인으로, 사람을 두려워하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죄로 백성들을 인도합니다. 죄는 한걸음으로 그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5-6절)고 하였습니다. 아론 마음대로 절일, 즉 축제일을 정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제물을 드리며 예배를 보는데, 참으로 가관입니다. 한번 무너지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앞장서서 악을 행합니다.
율법적인 신앙, 형식적인 신앙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중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서 겉으로만 여러가지 규칙과 제도를 지킴으로 훌륭한 종교인으로 기도도 멋있게 잘하고 봉사도 잘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속 사람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율법적인 신앙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앞장서서 더 불신앙적인 행동을 합니다. 불신자들조차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 정도는 지키면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데, 신앙을 가졌다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하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조차 버립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직책이나 교회 생활의 경륜이 아닙니다. 속 사람이 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6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래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들이 원했던 예배의 모습입니다. 경건은 사라지고, 그저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마음껏 먹고 마시고 뛰노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예배는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예배 모습은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 의식과 동일합니다. 여기서 ‘뛰논다’는 히브리어의 뜻은 실컷 술을 마시고 춤 추는 것을 말합니다. 어쩌면 이방인들의 제사처럼 더 나아가 그 앞에서 술 취하여 성관계를 맺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네 백성이 부패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7절하). 나중에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왔을 때 모세의 부름에 응하여 칼을 차고 나아와 형제 3000명을 죽일 수 있었던 사람들이 레위 지파 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은 그런 예배를 드리지 않았고, 그렇게 먹고 술을 마시며 뛰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6-27절).
오늘날도 사람 중심의 예배는 사람들의 억눌린 가슴을, 상처를, 분노를 하나님 앞에서 감정적으로 풀려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찬양을 불러도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아니라 답답한 자신들을 위한 찬양이어서 찬양을 드리고 나면 시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억눌린 가슴, 상처, 분노는 대부분 다 죄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드릴 때에 하나씩 치료가 되고 없어지는 것이지, 그런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폭발시키는 것은 신앙도, 예배도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께 그런 모든 하소연을 털어놓고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에는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나의 기분과 감정을 함부로 나타내서는 안됩니다. 예배는 나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나의 전부를 가지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벅찬 감격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배는 우리들의 축제, 우리들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제, 하나님을 축복하는 축제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우선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지 않습니다. 모세가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라고 부르시면서(7절), 끝에서는 ‘이 백성’(9절)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싶은 생각이 없으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7-9절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에 대하여 진노하고 계십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실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8절). 그들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너무 쉽게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반역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남았더라면 하나님께 기도해 보자고 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론에게 기도를 부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40일 가까이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마치 좋은 기회를 얻은 것처럼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기다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짧아 여호와 하나님을 애굽의 우상신들 중 하나처럼 여긴 천한 것이었습니다. 동물의 형상을 딴 우상으로 하는 신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에 다 심판을 받은 신이었습니다. 일부러 가축들에게 재앙을 내리신 분이었습니다. 셋째는 서론에서 언급하였듯이 그 백성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이 말은 농부가 말을 잘 듣지 않는 소나 말에게 사용하던 표현으로 고집이 센 것을 뜻합니다. 한번 생각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않고 끝까지 자기 고집대로 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10절)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파하시고, 모세의 자손들로 새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분명히 하나님을 아는 것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 백성들이 행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면 그들은 가장 큰 죄를 짓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보다 더 큰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까? 사람 중심의, 자기 중심의 신앙입니까? 교회는 다니는데, 여러분 안의 생각과 가치관은 지극히 세상적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역사를 기다리지 못하고 내 뜻, 내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신앙 양심을 찔러주는 하나님의 말씀은 불편해 하면서, 성경 말씀과는 거리가 먼 여러분 나름대로의 하나님을 만들어서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는 참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삶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 자신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자신의 생각과 논리, 경험을 따라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신실한 성도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참 성도들이 되어서 더욱 더 변화를 받아,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증거하는 모습들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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