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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9-09-08 (화) 09:3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99    
[9/6/09] 나와 같이 되기를
나와 같이 되기를 (행 26:24-32)
누가 진실로 행복한 사람입니까? 이 세상에서 누가 정말 성공한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눈에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지금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까? 저는 세상적으로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서, 지금 주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요,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들은 환경을 초월하여 주님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 예가 오늘 본문의 바울입니다. 지금 바울은 가이사랴 감옥 생활 중입니다. 아무 죄도 없는 그가 결박을 당하고 자유를 잃어버린 채 2년 넘게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하였습니다. 비록 자유가 없고, 감옥 생활을 하지만 자신이 주 안에서 기뻐하기 때문에, 행복하기 때문에 그렇게 빌립보 교인들에게, 아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문맥은 바울이 이미 9장, 22장에서 간증한 이야기를 지금 유대교와 그 풍속을 잘 알고있던 분봉왕 아그립바 앞에서 또 합니다. 우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말합니다(26:4-12). 자신도 여기 앉아 있는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던 유대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최고의 엘리트 길을 가기 위하여 가장 엄한 파인 바리새파 중에서도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열성적으로 유대교를 신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유대교의 엘리트로서 배운 바에 의하면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6-7절). 그것은 바로 죽은 후에 부활이라는 것입니다(8절). 부활 후의 진정한 기쁨과 축복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체험을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을 완전히 극적으로 바꾸어 놓은 일생 일대의 큰 사건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서는 열심으로 대제사장들에게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의 일입니다. 정오의 태양빛보다 더 강한 빛을 보았습니다(13-14절). 그 빛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빛이었습니다. 그 빛을 만난 후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는데 이방인들에게 그 빛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23절).
그러자 아그립바 왕 옆에 있던 베스도 총독이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가 자신이 총독으로 부임한 것을 축하하며 찾아온 아그립바와 그 누이동생 베니게를 비롯한 관리들의 모임을 마련한 것은 바울을 심문하고자 함이었는데, 자신보다 유대인의 사정을 잘 아는 이그립바 왕을 통하여 바울을 죄인으로 로마 황제에게 호송하기 위한 이유를 찾기 위함이었는데 오히려 바울이 담대하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즉 자신의 간증이 포함된 복음을 전하자 베스도는 갑자기 바울에게 크게 소리를 지르며 말합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24절하) 라고 하며 그를 제지하려고 합니다. 전형적인 헬라 사람으로서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자신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으면서 양심이 찔렸는지, 크게 반발하면서 미쳤다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기 ‘미치다’라는 헬라어 원어의 뜻은 ‘사로잡히다’ 입니다. 속된 말로 ‘예수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로는 베스도가 생각하는 대로 바울이 정신이 돌아서 하는 말이 아니므로 미쳤다는 말이 틀린 말이지만, 사실 맞는 말을 한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에게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주님에게, 하나님 사랑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을 만난 사람들로서 그렇게 주님에게 사로잡혀 사십니까? 믿지 않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말을 듣습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진한 사랑을 하게 되면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돈에, 정욕에, 취미에, 권력에 사로잡혀, 미쳐서 사는 것입니다. 그만큼 돈을 사랑하고, 정욕을, 취미를, 권력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주님을 진심으로 만난 성도라면 바울처럼 주님을 그렇게 사랑하며, 주님께 사로잡혀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주님을 따라가는 진정한 제자의 모습입니다.

자신을 미쳤다고 하면서 제지하려는 베스도 총독에게 바울은 25-27절에서,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미치지 않았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자로서 이 일에 대하여 알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비밀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하면서, 아그립바 왕에게,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라고 합니다. 즉 당신은 구약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를 믿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진 메시아에 대하여 믿느냐는 질문입니다. 믿는다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어야 한다는 역설입니다.
이 때 그 동안 잠잠히 듣고 있던 아그립바 왕은 적잖은 반발을 합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28절)! 즉, 아그립바는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로마제국을, 황제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데 단 몇 마디의 네 말로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다 무너뜨리고 너를 따라 예수쟁이가 되라는 말이냐는 뜻으로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 때 바울이 담대하게 외칩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 당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29절)!! 결코 왕을 멸시하며 비아냥거리는 투가 아닙니다. 정말 그 영혼을 존귀하게 여기며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말이 적고 많음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단 한번을 들어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혼의 행복과 기쁨, 만족에 대하여 진정으로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야 결박 당한 것조차 기쁘고 만족하겠지만, 그 모인 사람들은 그 정도는 아니라도 영혼의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처럼 다른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영혼의 만족을 그들도 누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이 가져다 주는 참된 자유, 기쁨을 그들도 누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경험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런 좋은 경험을 하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말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말입니다. 심지어 원수라도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지셨던 열정(passion)이었습니다.
원수가 망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그 영혼이 산다면 좋을텐데 하는 마음이 주님께 사로잡힌 성도들에게는 있다는 말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내 가정을 힘들게 하는 사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망해야 하지만, 그들도 예수를 믿어 영혼이 살아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하셨습니다. 사실 지금 베스도 총독이나 아그립바 왕이나, 둘러선 유대 지도자들이나 다 아무 잘못도 없는 바울을 힘들게 하는 원수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면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간절한 권면에 대하여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얼른 물러가서 두 가지 결론을 내립니다(30-32절). 하나는 바울이 사형이나 결박 당할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과 만약 황제에게 상고하지 않았더라면 여기서 풀어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는 복음을 적용하지 않고,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선택은 그들의 것이었지만, 복음을 거절합니다. 더군다나 유대인들에게는 참으로 비극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들의 선지자들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메시아였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조차도 설득당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그냥 헛되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에 바울에 대하여 그렇게 결론을 내린 자체가 어쩌면 이미 복음의 씨가 떨어진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반응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바울은 이유 없는 고통을 계속 당하지만, 그 고통 가운데 복음을 접하기 어려운 총독과 분봉왕에게, 그리고 많은 유대 지도자들과 권력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던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바울이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당시 세계의 심장부인 로마에까지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 그 뜻에 비추어 보면 바울을 위하는 아그립바 왕의 말은 사탄의 달콤한 유혹으로 들립니다. 하나님의 뜻은 고난 중에도 얼마든지 성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정욕입니까? 취미 생활입니까? 자녀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입니까? 그런 것들에 사로잡혀 살면서 심령이 기쁘고 행복합니까? 만족하십니까? 아마 아닐 것입니다. 영혼의 눈과 귀가 열리시기 바랍니다. 헛된 소망을 가지고 붙잡고 있던 것들을 다 놓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경험하십시오.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참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노예로 있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님에게 사로잡혀 보십시오. 기왕 믿는 것 한번 열심히 믿어 보십시오. 예수님 사랑에 미쳐 보십시오. 정말 여러분의 심령에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이 넘칠 것입니다. 영혼의 만족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 삶이 육신적으로 많이 힘들게 해도 말입니다.

이미 우리 주님을 만나서 믿고 사시는 여러분!
정말 우리 주님이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이 세상 나라와 주님 나라에 양 다리를 걸치고 살지는 않습니까?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으면서도 주님을 향한 사랑은 식어져 버리지 않았습니까? 피 묻은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사로잡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정말 행복합니다. 성공한 사람인 것입니다.
다시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하나님의 긍휼을 원수들에게조차 나타내고 사시기 바랍니다. 희생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희생은 항상 같이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라는 바울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에게 사로잡혀 사는 삶이 너무 좋습니다. 행복합니다’ 라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두움에 빠져 있는 이 세상에 강한 빛을 비출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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