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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9-18 (목) 10:48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2226    
역전의 인생이 쓰임 받으려면(수 8:24-35)
이 세상에는 역전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망한 것 같았는데 다시 회복이 되어 놀라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살아갈 의미가 전혀 없는 죽은 것 같았는데 살아난 인생들 말입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서도 대부분이 그런 역전의 은혜를 맛 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 역전의 계기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은혜를 깨달은 것이었을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놀라운 축복을 체험합니다. 한번 실패했던 아이 성 정복에 완전한 승리를 거둡니다. 아이 성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작전, 즉 유인과 매복 작전 지시를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작전에 휘말린 아이 성 사람들 모두를 죽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광야로 나왔던 사람들은 물론 아이에 남아있던 사람들조차 완전히 죽게 됩니다(24절).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사탄, 마귀의 세력들은 철저히 응징하시는 것입니다. 첫번째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사는 36명이 죽었지만, 이번 전쟁에서 아이 성 사람은 12,00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25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전리품을 취한 후(27절), 아이 성 왕은 사로잡아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였습니다(29절). 물론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해가 진 후에는 시체를 나무에 달아 놓지 않았습니다. 시체를 밤에 그냥 매달아 놓으면 그 땅이 더러워진다고 하셨기에 말입니다. 아이 성 입구에 던져 버리고, 큰 돌 무더기로 쌓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악한 자들의 죄악을 정죄하더라도 너무 도에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잔인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어 쓰임 받는다 하더라도 적당히 감정을 절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가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 완전히 승리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26절). 바로 전쟁이 시작할 때 신호가 여호수아가 단창을 들어 아이 성을 가리키는 것이 하나님의 지시였습니다(18절). 그런데 여호수아가 싸움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단창을 들고 있었던 것은 과거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모세가 살아있을 때 아말렉 족속과 전쟁을 치를 때에 여호수아가 앞장을 서서 싸웠는데, 모세가 팔을 들고 있으면 이기다가, 모세가 팔이 아파서 내리면 졌던 것입니다(출 17:8-16). 이것을 본 아론과 훌이 모세를 바위 위에 앉히고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하나씩 붙잡고 서 있음으로 결국 아말렉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가 배운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힘을 합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기도가 그치면 전쟁에서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중보기도의 힘으로 싸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작전지시를 해 놓고 싸우게 한 다음 자신은 팔이 아파도 단창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우리 형제, 자매들,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아야 합니다.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의 세력과 싸우는 영적인 전쟁은 우리 혼자 힘으로 이기기엔 벅찬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언제나 말씀을 붙드는 기도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는 힘을 쓸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30절 이하에 보면 전쟁에 승리하여 아이 성을 정복한 후에 여호수아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세우고 하나님의 언약을 재 확인하면서 제단을 쌓습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아마 이틀은 걸어갔어야 했습니다. 아이로부터 약 20마일 떨어진 세겜 땅 에발 산으로 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30절).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또한 남은 가나안 정복 전쟁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제단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규례를 따른 것이었습니다(신 27:1-8). 가나안에 들어가면 에발 산에 율법을 새긴 돌을 세우고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목전에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새 돌에 율법을 기록하였습니다(31-32절).
그런데 사실 마주보고 선 두 산 중에서 에발 산은 저주를 위해, 그리심 산은 축복을 위해 선택이 되었었습니다(신 11:29; 27:12-13). 하지만 에발 산에 제단을 쌓고 희생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완전히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저주를 면하게 해 주는 희생의 제단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치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저주를 당하시고 죽으신, 희생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 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31절하). 번제는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드리는 헌신의 제사이며(레 1:13-17), 화목제는 죄 사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 회복을 감사하며 드리는 제사입니다(레 3:1-16). 바로 우리의 예배가 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제사이며, 죄 사함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왜 철 연장을 사용하지 않은 제단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하나님 앞에 가식이 없는,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드린다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런 꾸밈이 없는 진솔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저 ‘죄인입니다’ 하고 말입니다. 가면을 쓰지 말고 말입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으면 실패한 모습 그대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여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변화시켜 주십니다.

여호수아는 제단을 쌓은 후에 모세의 율법을 돌에 새기고 나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롯하여 이방인들까지 모두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양편에 서게 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축복하기 위하여 율법에 기록된 대로 축복의 말씀과 저주의 말씀을 낭독합니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33-34절)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다 포함된 신명기 27:14~28:68까지 이었을 것입니다. 축복하기 위하여 낭독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꾸 잊어버리는 그 백성이라서 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하나님 언약의 말씀을, 그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자주 확인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하기 쉽고, 우리의 머리는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되새겨야 합니다. 믿음을 다시 확증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유혹 속에서 주님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을 따라가며,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일시적인 것을 추구하고자 애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까? 아무리 세상적으로 잘 살지 못하고 가난하다 하더라도, 건강이 좋지 않더라도 믿음이 확실하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기억해 보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언약을 붙들고 산다는 것은 축복의 통로인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한다는 표시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 큰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부흥입니다. 회복입니다. 인생 역전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도구들인 줄 믿습니다. 그 나라와 의를 위하여 헌신된 십자가의 군사들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잘 쓰임을 받으려면 자주 인생의 조율(tuning)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정도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는지, 해결되지 않은 죄가 있지는 않은지,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그 언약을 잊고 내 마음대로 사는 모습은 없는지 말입니다. 때로는 조율이 잘 되지 않아서 인생의 어려움을 만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나 조율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회복이 가능합니다. 언제든지 역전이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때문에 저주는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고 하였습니다. 사탄, 마귀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다만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나만 기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가족들도, 형제, 자매들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들을 위하여 중보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연약한 내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언약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축복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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