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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1-01 (화) 09:2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142    
[12/30/07] 또 한해를 마감하며
또 한해를 마감하며 (야고보서 3:1-12)
1년 전 저는 2007년을 맞아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인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5주에 걸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년 첫 주일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절) 라는 말씀으로, 우리 모두가 올해 초부터 주님을 본받아 자신을 죽이고 살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 죄에 대하여 죽어야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내 이웃이 살고, 내 교회가 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둘째 주일에는 주님을 본받는 데에 필요한 것이 훈련이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하)는 권면처럼 영적 훈련(spiritual discipline)이 없이는 우리 자신이 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훈련 중에 가장 기초 훈련인 우리 삶을 단순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주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셋째 주일에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 .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1-2상, 3)는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살아가신 삶을 생각하며 자주 내 삶과 비교하면서 조정할 것이 있으면 조정해야 한다, 내려 놓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를 묶어 놓는 것들, 무거운 짐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불신앙을 버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집착하는 것들을 내려 놓는, 포기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넷째 주일에는 주님을 본받기 위하여 겸손의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고 하신 것처럼, 겸손은 밑바닥으로 나를 낮추어서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를, 그 희생을 감사한다면 겸손이 자라게 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훈련은 우리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돌보실 줄로 믿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행동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5번째 주일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롬 12:1)고 하신 말씀으로, 주님을 본받으려는 우리에게는 희생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을 제물로,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도, 물질도 희생하는 훈련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조금씩, one decision at a time, one day at a time, 그러면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주님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조금 희생하고 무슨 대가를 바라는 그런 희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희생이 있어야 많은 열매가 맺힌다고 하였습니다(요 12:24). 성령의 은혜로 여러분이 희생함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이웃과 우리 교회에 많은 열매들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올 한해를 마감하면서 그렇게 주님을 본받기 위하여 훈련하며 보내었나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그렇게 살은 삶보다는 그렇게 못살아온 때가 더 많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진정으로 회개하기 원합니다. 참맘으로 자복하면서, 오늘 2007년 마지막 주일에 주님을 본받는 삶 가운데 아주 실제적인 한 부분에 대하여 점검해보고, 새해를 맞는 결단을 내리기 원합니다.

바로 말에 대한 것입니다. 주님을 본받는 말을 하고 살아왔나 돌아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야고보가 성령의 감동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심판을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1절). 이유는 가르치는 자는 무엇보다도 말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말의 절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2절)고 합니다.
실제로 말 실수를 하여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죄를 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도 이에 대하여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horses)과 배(ships)를 예를 들면서(3-4절) 우리의 입에 굴레를 씌울 것을, 통제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은 정말 입에 굴레를 씌워야 통제가 됩니다. 그래야 말이 유순해 집니다. 또 아무리 큰 배라 하더라도 항해사가 쥐고 있는 키로 배는 통제가 되고, 어디로든지 갑니다. 또 말은 불과 같아서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듯이 우리 온 몸을 더럽히며 마치 지옥 불처럼 불사를 수 있다고 합니다(5-6절). 그만큼 말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분노에 차서 함부로 내어뱉은 한마디 부정적인 말이 교회에 엄청난 파괴력이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세상의 다른 짐승이나 새나 벌레들은 사람이 길들이면 잘 길들여지는데, 사람의 혀는 길들여지기가 힘들다고 합니다(7절).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8절)고 합니다. 즉 다른 사람에 의하여 우리 말이 길들여지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 자신과 싸워 길들이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내 말이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고 파괴적일 때 아무도 고쳐줄 사람이 없습니다.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못 고칩니다. 결국 자기 자신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통제된 말일까요? 김서택 목사님은 1) 생각을 하면서 대화를 하되 대화의 목적에 맞는 정확한 표현과, 2) 상대방의 마음, 정신을 읽으면서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공감을 할 수 있지요. 그냥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말하지 않고, 한 마디 한 마디 생각 좀 하면서 말을 하면 실수가 적을텐데 말입니다. 오늘날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TV, 비데오, 영화 등의 영상 문화 속에 파묻혀 살기 때문에 생각하는 훈련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냥 보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버리지요.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기 스스로도 모르고 정리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논리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어떤 말 뒤에 감추어져 있는 사고와 정신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또 내가 이 말을 했을 때에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일까 하며 그 표현의 방법까지 신중하게 한다면 정말 실수가 적을텐데 말입니다. 문제는 한번 내뱉은 말은 엎지른 물을 주어 담을 수 없듯이 주어 담을 수가 없다라는 것이지요. 물이 엎지러질까 조심하듯이 주의하여 말하면 잘 통제된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평소에 평온하고 아무 일이 없을 때 말에 실수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문제는 화가 날 때, 마음 속에 분노가 있을 때에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상처가 있고, 분노가 들끓을 때, 흥분될 때에 올바른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말에 실수를 하게 되어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럴 때에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때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나오는 대로 퍼붓게 되면 그것이 바로 죽이는 독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 말에 쏘인 사람에게는 그 독이 쉬지 않고 퍼져 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경고하시기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욕)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절제된 말, 통제된 말, 유순한 말은 정말 은혜스럽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덕을 끼칩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한 입에서 찬송가 저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가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이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9-10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저주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미워해서 그가 망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히 마음에 분을 품을 때에 그런 말이 나오지요.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결정적인 위치에 두고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저주가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가 말해준 것 이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피상적으로 아는 것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저주입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이 우리는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저주하는 말도 하지 않고 언제나 찬송만 부르고 축복의 말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건 완전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한 입으로 찬송이 나가기도 하고, 또 더러운 욕설이 나갈 때도 있지만,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도록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실수를 줄여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마땅치 않다고 성경이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 가지 말, 맛있고, 멋있는 말만 할 수 있을까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의 마음 상태가 중요합니다. 한 샘에서 쓴 물에서 단 물이 같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11절). 무화과 나무에서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에서 무화과를 맺을 수 없습니다(12절). 예수님께서도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4하-35)고 하셨고, 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 15:18)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평소에 마음에 성경 말씀을 담고 있고, 선한 것을 담고 있으면 흥분될 때에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매일 매순간 우리의 영적 상태를 살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경건의 시간이 중요합니다. 내가 영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저 입을 닫아야 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영적 상태를 올바로 회복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와 부르짖어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삶의 지혜서라고 일컫는 잠언의 1/3이 말에 대한 교훈임을 아십니까? 너무나 많아서 제가 오늘 인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 안에 성령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신앙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2007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신앙양심에 호소합니다. 주님을 본받아 살자고 첫 주일부터 우리 모두는 결심하였었습니다. 다른 것보다도 우리의 말이 어떠했는지 돌아보십시다. 주님 닮은 말의 표현들이 우리의 입에서 나왔었습니까? 우리의 혀를 통제하며 한해를 지내왔습니까? 분노할 때에 퍼부은 말로 독을 쏜 일은 없습니까? 한 입으로 찬송하면서 저주도 한 일은 없습니까? 이 해가 가기 전에 주께 용서를 구합시다. 아니 나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찾아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시다. 참맘으로 회개합시다. 우리의 마음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십시다.
그리고 결단합시다.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의 마음에 선한 것들을 담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게 하소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소서!
그리하여 다가오는 새해에는 말을 절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로, 남을 판단하고 비방하고 저주하는 말보다는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술이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립시다. 생각하고 말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며 말합시다. 정말 덕스러운 말, 사랑스러운 말, 축복하는 말로 서로를 세워줍시다. 우리 자신을 죽이는 훈련, 낮아지는 훈련만이 그런 말을 하고 살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 벽두에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자아를 내어 던지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었습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우리 모두 말을 통제하고 삽시다. 우리의 행동을 절제합시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보다 성숙하여지는 한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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