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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4-15 (화) 12:4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133    
[4/13/08] 성령을 받았습니까?
성령을 받았습니까? (사도행전 19:1-7)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변화를 받아 참으로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전혀 변화를 체험하지 못하고 무능력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은 합니다만 종교생활로 그치고 맙니다. 세례를 받으라고 하면 세례도 받고, 집사로 하라고 하면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혀 세상에, 주위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영향을, 주위의 영향을 받고 삽니다. 세상 문화에 젖어서 삽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믿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막 시작을 하면서 에베소에 와서 소위 제자라고 하는 사람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2절 상)! 왜냐하면 정말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성령을 받은 사람이고, 그렇다면 그의 삶에 무엇인가, 어딘가 변화를 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들 사이에서 가장 혼란을 가져다 주고 있는 것이 성령에 관한 말씀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성령론에 대한 논란입니다. 구원과 성령의 관계,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의 차이, 성령의 은사들에 대하여 바로 알고 있지 못해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이 본문을 가지고,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다른 것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8장 24-28절에 아볼로를 보면서 9장 1절의 어떤 제자들, 세례 요한의 세례만을 받고 성령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들은 참으로 변화를 받은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자리까지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당시 에베소 도시에는 그 건축의 웅장함이 더 말할 나위가 없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풍요와 다산의 다이내나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었습니다. 세상적인 풍요로운 복과 자식을 많이 낳게 해 준다는 다이애나 여신을 믿으며, 그 신전에서 여사제와 성관계를 갖던 퇴폐하고 문란한 도시에서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따라 회개하려고 하고 세례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은 종교생활의 믿음이라, 참으로 힘이 듭니다. 자신이 잘못 사는 것에 대하여 회개만 늘 해야 하고, 도덕적으로 살며, 율법을 지켜가며 살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 자신의 힘으로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합니까? 안되지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처음으로 성령에 대하여 말씀해 주실 때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Spirit)을 설명하시면서 바람으로 비유하셨습니다(요 3:8). 그처럼 성령님은 우리 속에 운동을 일으키며 생기를 넣어주는 인격적인 바람이며, 바람과 같은 인격체입니다. 그래서 이 성령님의 영향을 받아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중생(born again)이라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나듯이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주님을 몸소 체험한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변화되어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성경책입니다. 주님께서 로마 군병에게 붙잡히시고 고난 당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만 해도 거의 다 배신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들이 변화를 받게 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한 것처럼,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순교하기까지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1절에 등장하는 에베소에 있던 어떤 제자들의 문제는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다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를 하였더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다는 것입니다(5-6절). 마치 오순절 날 첫 성령 강림 때의 사건과도 같이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세요. 그 때처럼 오늘날도 목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할 때에 성령이 임하는 것 아닙니다. 또 성령이 임한다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한다는 것 아닙니다. 이는 당시 초대 교회들이 탄생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증거가 필요했기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줄 때와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줄 때의 차이를 똑똑히 보여줄 필요가 있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오지의 선교지에서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오늘날 물 세례는 목사의 판단에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세례 받는 사람이 속임으로 목사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또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난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와 달리 우리 안에 한번 내주하신 성령님을 결코 떠나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補惠師, comforter)란 성령님의 다른 이름으로, 돕는자, 격려하고 위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격려하시며 도우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편지하기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하)고 하였고, 로마의 교회에게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5-16)고 하였으며, 에베소교회에게는 “그(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1:13)고 하였습니다.
즉,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의 감격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여러분의 심령에 평안과기쁨을 맛 보았다면 바로 성령이 임한 증거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여 감사의 눈물을 흘려보셨다면 이는 우리를 돕는,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입니다. 그 이후에 여러분의 삶에 변화를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큰 변화가 아니라면 작은 변화라도 말입니다. 삶의 목적, 방향이 달라졌고, 사고방식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늘 분노에 젖어 살았었는데 이제는 화를 절제하고 살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늘 교만하였었는데 조금은 겸손해졌을 것입니다. 내 욕심만 부리고 살았었는데 남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면, 미움에서 사랑으로, 절망 가운데서 소망으로, 축복의 통로로 살 수 있게 된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면, 이미 예수님 믿었고, 만났고, 성령이 임하여 내 안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변화된 삶을, 능력의 삶을 살지 못할까요? 가장 큰 이유는 지속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때때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이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었느니라”(엡 4:29-30)고 하였습니다. 성령님도 인격체이기 때문에 근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말 실수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지 못하고, 덕을 세우지 못할 경우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근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님께서 슬퍼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겠지요.
또 어떤 경우에 성령님께서 근심하거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에 가느다란 음성으로라도 무엇인가 지시하실 때 듣지 아니하면 그렇겠지요. 성령님께 민감하셔야 합니다. 청종하여야 합니다. 그 음성에 거역하지 마십시오. 능력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성경 구절 다음에서 말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데살전 5:16-22)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셔서 장작불이 활활 잘 타고 있는데, 거기에 물을 붓든지, 어떤 것으로 뒤집어 씌워 불을 끄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뻐하고, 감사하고 살고 있는데 그 무엇으로 인하여 그 불을 끌려고 하는 것을 가리켜 성령을 소멸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탄, 마귀가 주로 하는 짓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고 어찌하든지 모든 일에 좋은 것, 덕이 되는 것을 선택하여 악한 것은 무슨 모양이라도 버려야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활활 타오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계속 성령의 능력이 내 삶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 충만한 삶이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다른 죄는 다 용서하시지만 용서하지 않으시는 죄가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막 3:29; 눅 12:10) 하셨습니다. 성령을 훼방한다는 말은 성령을 모독하고 욕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우습게 생각하고 비난하는 죄를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서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안 계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예수님을 진실로 만나보지 못하고, 그 죄 사함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셔서 성령을 받지 못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을 만나고 믿고 성령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아주 어렵습니까? 오랫동안 병으로 인하여 고생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이민 생활의 여러 문제로 인하여 마음이 괴롭습니까? 어쩌면 주님께서 부르는 시간일지 모릅니다. 사랑을 부어주시려고 합니다. 보혜사 성령을 주시려고 합니다. 마음을 열고 결정하십시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믿고 받으시면 됩니다. 물론 진실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서 십자가를 바라보셔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셔서 인치시고 여러분의 심령에 평안을, 기쁨을,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 받은 증거입니다.
이미 믿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 동안 예배도 드렸고, 성경공부도 했고, 교회 봉사도 했고, 대표기도도 그럴듯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 주님을 안 만나셨을 수도, 성령을 못 받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 풍습과 문화를 잘 알아서 행동하기 때문에 교인들의 눈에는 성령을 받은 분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만약 세상에, 여러분의 주위에 성령을 받은 자로서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가짜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삶을 살아야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받은 구원을 의심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실수하지 않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전과 비교하여 변화가 생겼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 변화를 추구하며 주님을 닮아가려고 힘써야 합니다.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면 가짜입니다. 믿는다는 고백이 진실이 아닙니다. 회개하시고, 진실로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시며, 주로 고백하십시오. 어떤 변화를 주실 것입니다.

성령 받아 변화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우리는 한번 성령 받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지속적으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계속적인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간절히 간구하십시오. 매순간 기도하십시오. 결코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마십시오.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더군다나 소멸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더 잘 타오르게 불을 지피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늘 있어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여러분의 직장, 사업체, 학교 생활에도 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플러스 알파의 축복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교회 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녀도, 학생도 기름 부으심이 매일 있어야 축복의 통로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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