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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2-04 (월) 22:5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106    
[2/3/07] 능력있는 교회는
능력있는 교회는 (사도행전 17:1-9)
일대일 제자양육에서 우리 성도들과 세상과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서로 대치하는 관계도 아니고, 적당히 타협하는 관계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세상을 정복하여 변혁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도(창 1:27-28),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기도에서도(마 6:10),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도(마 28:18-20) 우리에게 이 사명을 주셨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도 사도 베드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이 세상에 나타내라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벧전 2:9).
무엇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좋은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000여년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이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그들을 비롯하여 그 주위에 일어났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런 변화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 한 예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제 2차 전도여행 중에 빌립보 성에서 전도를 하다가 옷 벗김을 당하고 매를 심하게 맞고 감옥에 갇힌 후에, 찬송과 기도를 드릴 때에 지진과 함께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하고, 그들을 지키던 간수의 가족들까지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어 세례를 받게 되는 일을 경험하였었습니다(행 16:22이하).
그리고 나서 거기를 떠나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유명한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됩니다(1절). 데살로니가 도시는 마게도냐 반도의 수도로서 정치와 상업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이 전에 하던대로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해석하고 강론하였습니다(2절). 3절에 보니 그 뜻을 풀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전하고 있는 이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 메시아라고 선포합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자면, 바울은 자신이 전하고 있는 이 복음은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을 설명하면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진실로 부활하심으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으니 그 분이 정말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이 이 세계 역사의,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대전환점이요, 절정이기에 이 예수님을 통하여 종말을 이미 시작되었으며, 구속의 새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 회당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유대인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약을 잘 알고 있었고, 구약에서 시작된 그 예언의 약속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부활을 통하여 성취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3주간의 사역의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바울은 몇몇 유대인들과 이방신을 섬기던 헬라인의 무리들과 유력한 인사들의 부인들이 그의 권함을 듣고 그들을 좇았습니다(4절). 5절에 나오는 야손(Jason)도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접대하고 집에 들였겠지요. 그래서 이들을 중심으로 유명한 데살로니가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의 탄생을 사탄, 마귀가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그래서 핍박을 합니다. 5절에 보면 그 핍박의 주체가 유대인들인데 그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주된 이유는 유대교에 호감을 갖고 회당에 참여하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전향하는 것을 시기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저자(시장)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같으면 시장에서 하릴없이 주름잡는 깡패들을 동원하여 소란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야손의 집에 찾아가 그들을 끌어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거기서 바울과 실라를 찾지 못하자 야손과 그 믿는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city officials) 앞에 데리고 가서 고소합니다.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6절하-7절) 라고 말입니다. 물론 9절에 보면 잠시 후에 보석금(bond)을 받고 놓아줍니다. 오늘날 보석금의 개념과는 다른데, 야손과 그 붙잡힌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데살로니가에서 떠나게 할 것을 보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의 고소 내용이 비록 종교적인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이끌고 나갔지만, 그 내용 가운데 올바로 말한 것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그들이 천하를 어지럽게 했다는 말입니다. 더 정확한 번역은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에 붙잡힌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진실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구세주로 믿고 사는 사람들은 주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삽니다. 어둡고 캄캄하던 곳에 빛이 임하니 당연하지요.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 소금이 뿌려져서 타락과 부패를 방지하고 오히려 맛을 내어주니 당연하지요. 죄에 물들어 살던 사람이, 세상 정욕에 파묻혀 살던 사람이 180도로 변하여 의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 위하여 사니 당연하지요. 세상이 놀랄 수 밖에요. 소동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개혁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삶이 바꾸어지고, 고쳐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 주위에 소동이 일어납니까? 여러분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속에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고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과, 더러운 마귀들과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여러분이 이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둘째는, 세상 임금 외에 다른 임금 예수라는 분이 있다라는 말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신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그의 식민지 백성들에게 로마 황제를 숭배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황제숭배사상을 강요하고 이데올로기화 함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체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7절에 말하는 가이사의 명은 황제에게 개인적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 바울과 실라는 황제의 명을 거스려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 부르고 그의 통치를 받는 새 시대가 왔다고 하였으니 어떻게 보면 로마 정부와 정치적 대결을 하는 듯이 보였을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정부를 뒤엎는 구테타를 일으키는 무리로 볼 수 있겠지요.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도 그런 오해를 받고 죽임을 당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이 임금인 것은 맞는 말입니다. 영적인 나라의 왕이시지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이지요. 믿는 자들의 삶은 왕이신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충성하는 신하의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명령과 세상 나라 황제의 명령이 상충할 때에 누구에게 복종하였겠습니까? 당연히 주님의 명령을 따랐지요. 비록 그래서 목숨을 잃어버린다 하여도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다면, 참된 왕이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르는 충성된 신하라면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런 능력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나중에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서신을 보면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역의 결과 몇 가지를 말해줍니다.
첫째는, 복음의 능력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의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데살전 1:4-5) 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교회를 축복하셔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의 모양 뿐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이 능력이 세상을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으로 받았기에 이 말씀이 그들 안에서 역사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데살전 2:13)고 한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열심히 사도들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사니, 그 말씀이 그들의 삶을 주장하여 능력을 나타내었습니다. 즉, 말씀의 능력이 세상을 뒤엎은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주님과 사도들을 본받고자 하였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데살전 1:6-7) 고 한 것처럼, 그들은 주님과 사도들의 믿음을, 삶을 본받고자 하였고, 실제로 닮은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 여러 지역의 성도들에게까지 본이 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세상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주님을 닮은 삶이 당연히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넷째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 때문에 세계 선교가 이루어졌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데살전 1:8)고 한 것처럼, 근교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만 주의 말씀이 퍼진 것이 아니라, 각처에 저들의 믿음이 퍼지는 바람에 전도여행을 다니는 바울에게 아무 말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저절로 세계 선교를 하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들이었습니까? 죄악된 세상을 뒤짚어 엎을만한 믿음이었지요.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복음,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합니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 그리스도는 없습니다. 있다면 가짜입니다. 비슷한 것도 가짜입니다. 복음은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바와 같이, 그의 분신이자 태초부터 함께 계시던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40일 동안 이 땅에서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신 후, 승천하셔서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앞으로 다시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진실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삶의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이미 성령을 받으셨으며, 주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가 그 안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어두운 죄악의 세상에 빛이 된 것입니다. 소금이 된 것입니다. 세상을 뒤엎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이룬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우리 교회도 분명한 복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성도들이,열심히 말씀의 가르침을 잘 받고, 복음의 능력을 소유하여 말로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세상에서 선한 영향을 끼치는 능력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주님이 왕이 되셔서 우리를, 우리 가정을, 우리 교회를 통치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주님을 본받는 우리들이 되어 그 소문이 우리 주위에 퍼져나가기를 바랍니다. 아니 더 멀리 퍼져나갈 수 있어서, 세계 선교를 감당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런 능력있는 교회, 능력있는 성도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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