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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4-29 (월) 05:4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00    
영적은사(4) (고전 12:12-20)






고린도교인들이 영적으로 살지 못하고, 육신적으로 사는 것에 대한 표시는 영적 은사들을 잘못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교회가 나뉘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계속 사도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4-11절에서 영적 은사들에는 여러 가지가 다양하게 있음을 설명한 후에, 교회가 주님의 영적인 몸으로서 하나됨을 지켜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본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12절에서 주님의 영적인 몸인 교회를 우리의 몸에 빗대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상식적으로도 우리 사람의 몸은 얼마나 신묘막측하게 창조되어 있고, 10조(100 trillion) 개 정도의 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몸 안의 각 기관들이, 조직체들이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압니다. 정말 몸의 작은 기관의 조직체 하나라도 망가지면, 없어지면 몸 전체가 고통을 받으며 힘들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각 지체들이 고유한 역할, 그 기능을 해 주어야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며 생활이 가능합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하니라”(12절하)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각 지체들이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그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작은 지체라도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다른 지체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지체들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고, 성령님이 지체들 안에 내주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하나됨을 지켜가며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즉, 겉 생김새나 신분이나, 자라온 배경이나 성격이 좀 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다 예외 없이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기에, 그 근원이 같기에 얼마든지 조화를 이루며 하나됨을 지켜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각자 다른 영으로 세례를 받은 자들이 아니라, 한 하나님의 영으로 죄 씻음을 받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에, 각 지체가 연합하여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동일한 성령님께서 교회를 한 몸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한 성령이 아니라 다른 영들로 세례를 받았다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단들이나 다른 종교인들과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이 예배하는 것이나 교회를 섬기는 모습이 백인들이나 흑인들의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민족성도 다르고, 음악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로서 신앙고백이 같다면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주적인 교회입니다. 그러나 몰몬교나 통일교 등 이단들에서 우리와 비슷한 예배를 드리고, 같은 언어와 음악을 사용해서 예배를 한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와 하나가 아닙니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한 성령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은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다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서도 신구약 성경전체를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자들은 무엇인가 다른 영을 받은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몸에 물이 가득하듯이 우리 믿는 자들은 다 같은 성령님을 마시고, 성령님으로 가득하게 하셨습니다(13절하).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4)고 세례 요한이 증거하였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고 난 후에 성령님이 우리를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하였습니다. 또한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진리의 성령)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니 계속적인 성령님의 부으심이나 도우심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우리 안에 영적인 생명이 주어지기 때문에 거듭나지 못한 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각과 영적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거듭나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곧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은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성령을 마셨다는 것은 우리 안에 공통적인 신령한 욕구와 생각이 있기 때문에 서로 하나일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성도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제하지 못하게 격리시키는 것입니다. 반대로 참된 성도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서로 만나서 교제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서로의 신령한 체험을 나누고, 서로 기도하며, 서로 가진 은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섬기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나누다 보면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지체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나누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러나 나누기만 하면 우리가 같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고, 같은 성령을 마셨기에 서로 같은 것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서로 헤어졌던 부모나 형제가 오랜만에 만나도 금방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되었고, 그 피로 맺어져 한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안에는 한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그래서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이런 진리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여 교회가 갈려져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영적 은사들을 가지고, 달라서 한 몸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 몸에 서로 다른 지체가 있어야 하고,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주어야 하며, 한 몸 안에서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감당해야 함을 계속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14-17절)라고 하였습니다. 해석이 필요 없는 구절들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되지요. 발은 발로서, 손은 손으로서, 눈은 눈으로서, 귀는 귀로서 몸에 붙어 있어서 각각 그 역할을, 기능을 감당하는데 만약 몸에 붙어있지 않는다면 이미 그 역할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혀가 나는 아니라고 해도 사실은 붙어 있으니까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있지, 붙어있지도 않는데 어떻게 불평이 가능합니까? 몸에 붙어 있어 다 신경이 연결되어야만 각자가 그 역할을 함으로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발이, 자기는 손이 아니기 때문에 한 몸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거나, 귀가 나는 눈이 아니기 때문에 한 몸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 안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모순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는 다 한 몸에 붙은 지체로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임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지체가 떨어져 나가면 그 지체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의과 대학에서 인체해부시간의 실험대상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유기적인 연합은 그 안에 피가 돌고 있고 신경 조직이 있기 때문에 몸이 망가지지 않고는 지체를 뗄 수가 없으며, 한번 떨어지면 그 지체는 죽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경과 혈관이 붙어있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은 항상 여러 지체가 있음을 생각해야 하고, 지체는 언제나 자기가 한 몸에 붙어있는 일부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나는 왜 이런 지체냐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직접 불평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원하시는 뜻대로, 주권적으로 지체를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18-19절)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고린도교인들 가운데 자신이 받은 영적 은사들에 대하여, 직임에 대하여 불평 불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발이 왜 나는 손이 되지 못했느냐고, 귀가 왜 나는 눈이 되지 못했느냐고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발이 발이 되고 싶어서 발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귀가 귀가 되고 싶어서 귀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귀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각각 받은 은사에 따라 다르게 만드셔서 한 몸이 되게 하셨는데, 그것에 대하여 불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따지는 것이니 얼마나 오만불손한 피조물인 것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아니, 다 한 지체라면 몸이 어떻게 됩니까? 다 발이면, 다 손이면, 다 눈이고 귀면 인간이 아니지요. 괴물이지요. 아니 그 안에 생명이 있을 리가 없지요. 즉 다 목사고, 다 찬양 사역자이면, 다 교사면 누가 교인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은사들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불평하는 것은 어떤 상식적인 수준에 못 미친다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없는 은사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그의 선하신 뜻에 의문을 갖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실수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습니다. 실수하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인들의 문제는 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였던 것입니다. 신앙적인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으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 9:20-21)라고 하였습니다.
   즉, 어떤 성도가 불평만 일삼으며 전혀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겠다는 의도에 거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거역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과 그 주권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각 지체들은 자신의 뜻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되신 주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각 지체는 머리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자기 뜻대로 하는 사람은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발이 아무리 튼튼해도 머리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아니 손이든 눈이든 귀이든 어떤 지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지시대로 움직인다면 정말 몸은 아주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잘 움직일 것이며, 그 하고자 하는 뜻을 잘 감당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너무 우리를 잘 아셔서 그 놀라운 지식으로 우리 각자를 알맞은 곳에 적당히 배치하셔서 일하게 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닙니까? 감히 유한하고 제한된 지식을 가진 우리가 우리 뜻대로 일한다고 하면 정말 잘못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능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많은 이민교회 교우들이 주님의 영적인 몸인 교회에 대한 올바른 교회관(론)을 갖고 있지 못함을 봅니다. 교회관(론)이 건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건전하고 균형 있는 신앙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물론 바로 가르치지 않은 목회자들의 책임이요, 그런 건강하지 못한 교회에서 받은 상처 때문입니다. 교회관(론)이 건전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세상 구속역사를 펼쳐가시면서 그 중심에 교회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교회가 실수가 없거나 완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도 죄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때로 실수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교회관(론)을 가진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서 하나됨을 지켜가며 신실하게 지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며, 이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오늘 말씀의 결론을 20절에서 다시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교회 안에 여러 지체들이 있지만, 몸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몸인 것을 늘 기억하고, 좀 달라도 하나됨을 지켜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게 어떤 은사를 주셨든지 간에, 나에게 어떤 직임을 맡기셨던 간에 그저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몸의 건강을 위하여, 몸이 정상적으로 잘 움직이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올바른 교회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신실하게 지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성령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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