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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6-03 (월) 11:5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63    
사랑의 속성(2) (고전 13.5)


지난 주일에는 아가페 사랑의 속성들 가운데 4절에 나타난 첫 5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아가페 사랑은 사람에 대해 오래 참는다고 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 대해 온유함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친절하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시기, 질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른 지체들과 비교하지 않으며, 경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 외에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말입니다. 자신에게 주목하지 말고 우리의 눈을 주님에게만, 그 사랑에만 고정하면서 주님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사탄 마귀의 근본적인 속성인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5절,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에 나타난 6번째부터 9번째까지의 아가페 사랑의 속성들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여섯째, 아가페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여기 ‘무례히 행치 않는다’라는 헬라어 원어는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고전 7:36)라고도 번역이 되었는데, 예의에 어긋난 거친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문의 정확한 해석은 ‘사랑은 어느 사람에게 책망을 받을 것처럼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혹은 ‘사랑에 어울리지 않는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함부로, 거칠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정말 나쁜 것은 약한 자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여러 면에서 강한 자들에게는 꼼짝 못하면서 어떤 면에서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하다고 생각이 되면 무례하게 행하는 사람은 사랑은커녕 비겁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어떤 때는 나름대로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대하면서 고통을 주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례하게 행하는 사랑이라고 말하면 어폐가 있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 사랑이 아닌 자기 식으로 하는 사랑이겠지요. 어쩌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준 위치, 자리, 그 본분에 맞게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자녀들에게 사랑을 나타내야 하며,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사랑을 하며,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평신도를 사랑하며, 평신도는 평신도로서 목회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누구이니까 나는 내 방식대로 사랑한다면서 무례히 행한다면 누군가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위치를, 주제파악을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분에 걸맞게, 의무와 책임감 속에 사랑해야 합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무례히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우습게 얕잡아 보면서 말하고 행동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로 대해주신다니 몸 둘 바를 모르면서 귀하게 여겨야지, 친구이니까 함부로 대한다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 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지존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며 유한한 인생이 아닙니까? 결코 하나님과 눈 높이를 같이 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닙니까? 비록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의인이라고 불러주시지만, 우리는 죽을 죄를 용서 받은 죄인의 자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궁무진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은 나를 무진장 사랑하니 내가 이 정도 죄를 지어도 다 용서해 줄거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이런 저런 복을 주시는데 받는 게 당연해’라고 한다면 죄인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의 자리에서 말하는 아주 무례하고 건방진 모습입니다. 우리는 사랑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일곱 번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헬라어 원어에 의한 정확한 해석은 ‘사랑은 자신을 찾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기적(selfish)이라는 단어는 자아(self)에서 나왔습니다. 즉 아가페 사랑은 인간의 본성인 이기적인 자기 사랑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사랑은 결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남을 희생시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밟으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챙기려 합니까? 그 사람을 어려움에서 구해내는 것이 사랑이지, 그 기회를 사용하여 자기 것을 챙기려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사랑한다고 찬양하면서 혹시 그런 짓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죽어도 자기 이익은 버리지 못한다면서, 아니 절대로 손해 보지 않으려고 싸우지는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그런 사랑이 우리를 감동시키셔서 우리가 변화 받지 않았습니까? 오늘도 우리의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랑이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다 버린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갖게 되며, 자신의 유익만을 찾는 사람들은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제일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행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입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웰빙입니까?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복한 심령이라면 자기를 잊어버리고 삽니다.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주님이시기에 그 분에 사로잡혀 살기 원합니다. 사실 믿는 우리들의 삶의 원동력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복음을 전하며, 이 사랑 때문에 낮아져 형제, 자매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내 자신을 죽이고, 우리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사실 모든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상처와 고통은 자기가 죽지 않아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의 사랑이 온전히 내 삶을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저 자신을 주님의 손에 온전히 내어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자신을 죽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 ‘성 내지 않는다’는 원어는 ‘격동되지 않는다,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즉 무엇에 자극을 받아도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고 격노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어떤 일에도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주님도 화를 내신 적이 있습니다. 본문이 거룩한 의의 분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에, 외부적으로 어떤 자극을 받을 때 부패한 본성이 발동하여 폭발하는 감정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부패한 본성이 성령의 은혜로 통제되기에, 그 어떤 외부의 자극에도 격노하지 않습니다. 잠깐 화가 나도 금방 해결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감복한 사람들은 좀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서운해도 성 내지 않습니다. 자기 분에 못 이겨 씩씩대면서 욕하며 화를 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처럼 노하기를 더디합니다.
   우리 주님은 온갖 모욕과 멸시를 당하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어도 성 내지 아니하고 순전히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대로 화를 내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그대로 다 쏟아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살아서는 하나님 사랑을 나타내 보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이민 생활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어느 누가 주님께서 이 땅에서 당하신 고통을 당하고 삽니까? 그것보다는 훨씬 작은 어려움 아닙니까?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알고 경험했다면 우리는 성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참지 못하여 악하고 부패한 본성으로 말미암는 분노는 그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인격에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성을 내고 난 후에 후회막급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반대로 어떤 자극이 와도 부패한 본성을 따라 반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전인격에 그것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져 자극에 쉽게 반응하게 되면 우리의 심령에 어두움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너무 손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성내지 말아야 합니다.

   아홉 번째,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악한 것’이라는 단어는 저속하고 비열한 행동을 말합니다. 그리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단어는 악한 것을 머리에 간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원문의 의미는 상대방의 잘못을 기억하면서 그런 비열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앞서 나온 “성내지 아니하며”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즉 성내지 않는 것과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아니 생각이 먼저니,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당연히 성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한 행동에 대하여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면 성을 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그 동기를 악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난하거나 서운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성 내지 않지요. 아무리 나를 화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라 하더라도 악한 의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게 해를 입힌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정말 악한 의도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선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아가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상처나 모욕을 오래 간직합니다. 머리 속에 기록해 놓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한 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헤아립니다. 마치 비데오로 녹화해 놓았다가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사랑이 많은 사람들은 쉽게 그것들을 잊어버립니다. 즉각 그 비데오를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오래 간직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많은 사람들은 늘 삶이 풍성하지만,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삶이 빈약합니다. 어둡고 우울합니다. 아가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상처를 기억하고 원망이 오래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을 알고 경험한 자들은, 그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은 누가 아무리 독한 말을 하며 칼로 찔러도 사랑의 피만 흘러나옵니다. 반대로 그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누가 조금만 아쉬운 말을 하며 건드려도 상처들이 쏟아져 나오며 격노합니다.
   십자가 사랑을 경험한 믿는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마음과 생각을 지킵니다. 선함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악하거나 독한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자들입니다. 세상의 유혹 속에서도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악한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은 세상의 유혹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생각이 가득차 있다면 결코 악한 생각이 자리잡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찬,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찬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쓸데없는 근심 걱정을 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싸우셔야 합니다. 사탄, 마귀는 어찌하든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으려고 합니다. 가만히 두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하려면 부단히 자신의 죄성과 싸우며,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무례히 행하지 마십시오. 가까운 사람일수록 예의를 지키십시오.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더욱 존중하십시오.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십시오. 자신의 유익보다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십시오. 어떤 자극을 받더라도 쉽게 성내지 마십시오. 좋게 생각하십시오. 적어도 동기나 의도는 좋았을 것이라고 해석하십시오. 악한 것을 머리에 기록해 두지 마십시오. 빨리 지우십시오. 마음과 생각을 성령님께서 지배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사랑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심령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 거룩한 사랑에 사로잡혀 사시기 바랍니다. 저절로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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