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46,194
오늘방문 : 1355
어제방문 : 17300
전체글등록 : 3,867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9-01-07 (수) 10:2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10    
[1/4/09] 허락하신 비전을 꼭 이루게 하소서!
비전을 꼭 이루게 하소서 (하박국 3:19)
말 그대로 다사다난 했던 2008년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이민사회적으로 뿐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많은 일들을 안팎으로 겪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지난 4월 말에 새성전 착공예배를 드리고, 5월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약 6개월간 교회 주변에서 땅을 파며 흙을 실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홍수를 대비하는 큰 못을 만들었고, 크고 작은 파이프들이 묻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차장을 만드는 것도 보았습니다. 때로 비가 계속 내려 공사가 지연되는 것도 보았고, 우리 새성전 공사 때문에 교회 뒷 집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간간이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드디어 빌딩을 위한 Site 공사들이 거의 매듭을 지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계속 도와주신다면 이제는 실제 건물 공사가 곧 시작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에 주신 비전을 작년 첫 주일에 여러분과 나누었습니다. 새성전에서의 2세 교육과 이웃 전도와 제자 양육뿐 아니라 세계 선교의 일부분을 감당하는 교회로서의 비전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2세 교육을 전담할 귀한 사역자를 보내주셔서 새성전 입당을 준비하며 2세 영어권 사역의 부흥을 꿈 꿉니다. 그리고 새성전이 완공되고 나면 300명의 헌신자를 세워서 이민 교회들 가운데 개혁주의 장로교회의 모델교회로서 교육과 선교를 비롯한 많은 사명들을 감당할 꿈을 꾸어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이러한 우리 교회의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교인들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유는 같은 소망, 동일한 비전을 갖지 않고,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지 않음으로 주님의 일을 그르쳐서 되겠습니까? 정말 우리 경향가든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향한 이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한 마음으로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때가 오면 꼭 우리의 비전을 이루어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물론 저는 여러분 개인과 가정의 비전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만약 비전이 없다면 비전을 가지시라고 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비전이 없다는 것은 그의 시선이 눈 앞에만, 현실에만 머물러 있음을 뜻합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감정대로, 욕구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물론 제가 말하는 비전은 허황된 꿈, 공상 즉 공허한 망상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꿈만 꿀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이란 반드시 그 비전에 맞은 행동이 뒤따라 오기에 어떤 형태로든지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비전을 바라보며 현재 부단히 자신을 맞추어 가기에 거기에는 어떤 형태로든 가시적인 결과가 나타납니다. 또한 비전은 야망과는 다릅니다. 야망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수반한다는 면에서 허황된 꿈이나 공허한 망상과는 구별됩니다. 또 야망을 지닌 자는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무엇인가 새로운 목표를 향해 계속 나간다는 면에서 비전과 동일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은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망은 욕망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참되거나 바를 수 없습니다. 야망을 위해서 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에 과정 중에도 그렇고, 성취되면 될수록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모두 살리고, 유익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상이나 망상이 아닌, 야망도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물어보셔야 합니다. 성령이 내주하신다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주전 500여년 전에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8)라고 말입니다. 여기 꿈과 이상은 비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순절 이후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사실 지난 송구영신예배 설교와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새해 첫 시간을 맞아 다윗처럼, 하박국처럼 기도하자고 권면했습니다. 우리의 시대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는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을 의지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을 다 가져가셔도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인하여 기뻐하며 찬양을 드리자고 했습니다. 주님의 손에 우리 인생을 맡기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자고 했습니다. 우리의 잘못이 있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환란 중에 있을지라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하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비전을 이루어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9상) 하신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송구영신예배에서도 설명을 드렸지만 하박국이 만난 당시의 상황은 어두움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1장에 보면 “어찌하여”를 반복하고 있는 하박국 선지자입니다. 그 백성들의 간악과 겁탈, 강포를 보고 있고, 변론과 분쟁을 보는 가운데 이제 곧 바벨론이 그들을 침략하여 나라가 망하고 자손들이 포로로 붙잡혀 가게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3장에 나타난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이 얼마나 힘든 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3장 16절에도, 자신 앞에 놓인 환란 날을 생각하니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며, 뼈와 몸이 떨리는 산송장과도 같은 형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고, 17-18절에 고백하는대로 주신 선물을 다 가져가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기에, 또한 주님이 그의 힘이 되시기에 자신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셔서 골짜기에서 높은 곳, 정상에 오르게 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사슴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그 발의 힘이 세지요. 단숨에 골짜기에서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는 사슴이 아닙니까? 성경에서 표현된 높은 곳, 정상의 의미는 세상적인 의미의 정상이 아닙니다. 최고의 권력에 오르는 것, 최고로 부자가 되는 것, 최고의 학부를 마치는 것, 최고의 미인이 되는 것 이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마다 교회마다 다 정상이, 비전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고 주로 시편을 비롯하여 성경에 나타나는 높은 곳의 의미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실현되는 비전’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God-given Vision)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성취하는 것이 바로 높은 곳, 정상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 높은 곳에 도달하기 전에 반드시 낮은 곳을 지나야 합니다. 어두운 시간들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낮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간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그 시간이 몇 달, 몇 년, 몇 십년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 골짜기를 통과하는 하박국에게는 70년이 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면 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 지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싫어하십니다. 자기 의를 주장하면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달리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하)라고 기도하는 세리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교훈하시기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14절에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질 때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게, 지금도 살아계셔서 주님의 피값을 지불하고 사신 교회를 지키시며, 주님의 교회에 허락하신 비전을, 세우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또한 여러분 개개인을 향한 비전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일곱번까지 애써야 합니다. 여리고 성도 일곱번째 돌고 무너졌습니다. 엘리야도 일곱번 기도하고 나서 작은 구름이 나타나 비가 올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숫자요, 영원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이루어주실 때까지 힘쓰고 애쓰는 것입니다. 한번, 두번 노력하고서, 한두번 기도해보고서 포기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치열하게 싸우고 있음을 잊으면 안됩니다. 얼마나 사탄, 마귀들이 싫어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새성전이 웅장하게 지어져 가고, 하나님의 비전들이 이루어가는 것을 가만히 구경할 사탄, 마귀가 아닙니다. 이것을 경계하고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저 모일 때마다 새성전 건축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위하여 부르짖어야 합니다. 영광의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잘 참아 내십시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새해를 시작하면서 새롭게 다짐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냥 현재 상태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익숙한 것으로부터 떠날 것을 종종 가르칩니다. 장성한 자녀에게 익숙한 가정과 부모를 떠나라고 합니다(창 2:24). 우리 삶에 배어있는 나쁜 습관, 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합니다(대하 7:14). 모든 죄와 우상에서 떠나라고 합니다(겔 14:6; 18:30). 게으름으로부터 떠나라고 합니다(잠 6:6-11). 소망 가운데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비전을 이루라고 육체적으로 떠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그에게 가장 익숙한 것들에게서 떠났지만 그 결과로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이나 기거하던 미디안을 떠났습니다. 만약 모세가 미디안을 떠나지 않았다면 홍해의 기적이나 광야에서의 불 기둥, 구름 기둥, 하나님과의 대면, 십계명을 받는 영광 등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기드온,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사도 바울 등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편안함과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결별하여 비전을 성취했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하나님의 품에 있다가 하나님 아버지와 결별을 하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셔서 그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새해를 맞아 한번 여러분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저 매일 살던 방식 그대로 살겠습니까? 익숙해져 있는 일, 타성적으로 하는 일 그대로 답습하겠습니까? 때로 힘들지 몰라도, 가슴 아플지 몰라도 어쩌면 익숙해져 있는 편한 것으로부터 떠나는 결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와 성장과 도약을 위하여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고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어령 씨는 ‘젊음의 탄생’이라는 최근의 저서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장점도 있지만 ‘왜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비행기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해본 사람이 없는가’ 하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이탈리아에서는 9세기, 11세기, 15세기, 그리고 미국에서는 비행기를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몇 명이 있고, 라이트 형제도 오토라는 사람이 추락사하였다는 기사를 보고 도전했다가 드디어 1903년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29:18)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묵시라 함은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 혹은 인도(guidance)를 의미하며, 방자히 행한다는 뜻은 신중함이나 자제력을 상실한 경거망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는 사람은 함부로, 되는대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말씀이 없는 개인도, 가정도 마찬가지요, 말씀이 없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신다면 허락하신 비전을 반드시 이루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교회의 비전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입니다. 그리하여 큰 영광을 돌려드릴 것입니다.
내 시대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가 되심을 기뻐하고 찬양하며,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와 함께 허락하신 비전을 이루어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은 비록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한다고 해도, 나를 낮추며 참고 인내하여 주님 주시는 힘으로 높은 곳에서 다니게 하실 그날, 비전이 이루질 그날을 소망하며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082 수요설교 하나님의 집(딤전 3:14-16) 한태일 목사 2012-06-29 2006
1081 수요설교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딤후 4:6-8) 한태일 목사 2014-08-14 2004
1080 수요설교 올바른 기도 한 태일 목사 2011-01-07 2004
1079 주일설교 [11/18/09] 수요예배 - 인간에게 가치있는 것 한태일 목사 2009-11-20 2003
1078 수요설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25-34) 한태일 목사 2012-10-15 2002
1077 주일설교 정말 사랑해야 합니다(요 13:31-35) 한태일 목사 2011-08-29 2002
1076 주일설교 [8/9/09] 전도는 . . . 한 태일 목사 2009-08-10 2002
1075 주일설교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신 23:15-25) 한태일 목사 2012-12-06 2001
1074 수요설교 거룩한 백성으로서(신 23:1-14) 한태일 목사 2012-11-30 2000
1073 송구영신예배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하 7:25-29) 한태일 목사 2013-01-02 1999
1072 주일설교 영적 은사 (5) (고전 12:21-31) 한태일 목사 2013-05-06 1998
1071 주일설교 [1/25/09] 서로 용서하는 모임 한 태일 목사 2009-01-25 1998
1070 주일설교 신앙 양심의 증거(고후1:12-14) 한태일 목사 2013-09-30 1996
1069 주일설교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연합(3)(롬 15:1-13) 한태일 목사 2016-12-12 1995
1068 주일설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요 4:23-24) 한태일 목사 2014-01-06 1995
1067 주일설교 진심으로 용서하면 모두가 복을 받습니다(고후 2:5-11) 한태일 목사 2013-10-28 1992
1,,,1112131415161718192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