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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9-30 (월) 23:3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96    
신앙 양심의 증거(고후1:12-14)



자동차나 배, 비행기 등은 경고 장치(Warning System)가 있습니다. 그래서 운전하다가 경고 장치에 불이 들어오면 멈추어 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고쳐야 정상적으로 운행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에게 경고 장치를 주셨습니다. 바로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어느 누구나 기본적인 양심을 다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잘못을 하면 양심이 증거를 합니다. 물론 차도 경고 장치가 고장 나서 아슬아슬하게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듯이, 사람도 경고 장치가 고장난 인간들이 있습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은” 인간들입니다(딤전 4:2). 여기 ‘화인 맞았다’는 말은 양심을 뜨거운 다리미로 문질러서 굳어진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잘못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새롭게 변화를 받은 신앙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통 인간의 양심보다 더 섬세하고 수준 높은 양심으로서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성경 말씀에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불신자들보다 더 죄에 대하여 민감합니다.

   사도 바울은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교회에 고린도전서 서신을 보내어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신앙적인 해결책들을 가르치고 권면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원래 에베소에서 고린도를 거쳐서 마게도냐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고린도로 돌아와 오랫동안 말씀으로 그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 아직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어서 계획을 바꾸어 바로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이 변경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를 비난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약속을 해 놓고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일관성이 없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여러 환난을 당한 것은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징계라고 비방하였습니다.
   사실 교회는 어떤 이해관계로 모이는 곳이 아니라 믿음으로 모이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Savior)로, 주(Lord)로 믿는 믿음 하나로 모이고, 서로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모이는 것입니다. 헌데 만약 이 믿음이 깨어진다면 교회는 분열되고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는 교회 안에서 이 믿음을 변질시키려고 하고, 교인들 사이의 신뢰에 금이 가도록 해서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려고 애씁니다.
   그러니까 몇 몇 사람들이 바울이 고린도 방문 계획을 바꾸자,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악선전을 하면서 비방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은 좋지 않은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려는 죄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비방은 바울에게, 아니 고린도교회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바울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고린도교회에 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에는 아무리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다른 사람이 욕을 하던 말던 하나님께서 오해를 풀어주시리라 믿고 철저히 무반응으로 대합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길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원인이 사탄, 마귀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 외에는 이런 일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물리쳐 주셔야 하니까요.
   그런데 바울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고린도에 가서 말씀을 전할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한 후에(3-11절) 자신이 처음부터 고린도교회에 어떤 태도로 임하였으며, 자기 양심이 분명히 증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선 바울 자신은 도덕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자기 양심이 증거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12절)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특별히 고린도교인들에게 대하여 자신과 동역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대했다고 합니다. 여기 “거룩함(Holiness)” 이라는 단어는 도덕적인 순결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기조차 순결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진실함(Sincerity)” 이라는 단어는 태양광선이 비추어서 조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에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어 팔 때에 손님이 그 그릇을 태양빛 아래 비추어 금이 간 곳이 있는지, 흠이 있는지 조사할 때에 사용한 단어입니다. 그러한 거룩함, 진실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지 육체의 지혜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인간적인 지혜로, 잔머리 굴리면서 그들을 대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대하고, 주의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울을 비난하는 자들에 대하여 자신의 양심이 증거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담대히 자랑까지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전혀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미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 4:4)고 하였었습니다. 이 양심은 인간이 가진 최고의 잣대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양심이 완전하거나 실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죄라는 것은 워낙 교묘하여 인간의 양심이 자책하지 않아도 우리가 죄를 짓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는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다윗은 그런 신앙양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24)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잘못이 없다고 양심이 증거한다고 합니다.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13-14절)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은 도덕적으로도 깨끗함을 양심이 증거하고 있고,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조금도 죄책감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가 누구를 속이거나 조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너희 모든 사람이 다 읽고 아는 것 외에 숨기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잘못 가르친 것이 전혀 없으며, 그것들 외에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주 투명한(transparent)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몰래 카메라로 찍어도 별로 다른 것이 나올 게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교인들도 부분적으로라도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우리가 다 그런 투명한 삶으로, 좋은 관계로 주님 앞에 서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숨기는 것이 있고, 다른 마음과 생각을 품고 있다면 서로에 대하여 실망하게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서로에게 자랑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탄, 마귀가 좋아하는 것이 교회 안에서 서로 불신하도록 조장을 해서 서로 사랑하지 못하도록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교회의 지도자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서 쓰러뜨리려고 합니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전도사, 구역장, 지회장, 부서장 등 말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항상 사탄, 마귀의 첫째 공격의 대상인 줄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도자일수록 더욱 삶이 투명해야 합니다. 양심이 떳떳하게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증인을 남겨 두어서 언제 어디서나 사탄이 트집을 잡더라도 떳떳해야 합니다. 어딘가 냄새 나는 데가 있으면 결국 넘어지게 되어 있으므로 자신의 약한 부분에 대해 솔직해야 합니다. 그것을 자꾸 감추고 아닌 것처럼 행동하게 되면 결국 사탄의 올무에 걸려들게 됩니다. 돈에 대하여, sex 에 대하여, 외모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공명심에 대하여 심지어 취미 생활에 대하여 약하다면 경계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틈도 허락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청결한 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딤전 1:5) 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이 훨씬 그 뜻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The goal of this command is love, which comes from a pure heart and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 이어서 19절에도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집사의 자격을 말할 때에도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 3:9)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도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6)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면 누가 비방하고 욕을 해도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방한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자신과 동역자들이 선한 양심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 확신하노니(Pray for us. We are sure that we have a clear conscience and desire to live honorably in every way.)”(히 13:18)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믿는 사람들은 양심을 깨끗하게 유지하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늘 선한 양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살아계셔서 늘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대적들의 온갖 핍박과 거짓 고소, 믿었던 교인들이 실망을 주어도 신앙양심을 지켜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같은 고백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들과 같이 신앙양심을 지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는 실족함이 없도다”(시 37:30-31)라고 하였고,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지 아니하면, 묵상하지 아니하면 여러분 마음의 죄성이 늘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실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 깨어 사탄, 마귀를 경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자만하면 안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하였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려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신앙양심을 지키며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를 가볍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죄라고 생각하고 쉽게 죄를 짓는다면 신앙양심이 더렵혀진 사람입니다. 그 작은 죄 때문에 예수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죄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데살전 5:19-22)고 하였습니다. 죄와 싸우되 피를 흘리더라도 싸워야 합니다(히 12:4). 만약 실수로 범죄했다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 유혹의 첫 사인이 올 때에 거절해야 합니다. 피해야 합니다. 웬만큼 성숙한 신앙인이 아니면 백이면 백 다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그런 자리를,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이 생기기 시작할 때에 제거해야 합니다. 처음에 잡지 않으면 이기기 힘듭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약 1:14-16)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말씀과 기도로, 유혹이 오기 시작할 때부터 물리쳐서 깨끗하고 선한 신앙양심을 지켜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자신 있게 내 신앙양심이 증거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바랍니다. 정말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도덕적으로도,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떳떳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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