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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2-18 (월) 08:1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83    
살았다 하나 죽은 자로다(계 3:1-6)


지난 주일 두아디라 교회를 살펴볼 때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나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기에, 이 세상이 보는 눈, 평판(reputation)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Looks can deceive you! 사람들이 보기에 살아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죽은 상태에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데교회가 겉은 화려하여 그 명성이 자자했지만, 주님의 눈에는 죽어있는 교회였습니다. 소아시아의 사데 도시는 옛 루디아(Lydia) 왕국의 수도로서 아주 활기차고 부유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사실 소아시아 지방에서 화폐를 제일 먼저 만든 도시이기도 하였습니다. 주위에 도로가 잘 만들어져서 북쪽으로는 두아디라를 거쳐 버가모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54마일이 떨어진 서머나로 향하고, 동쪽으로는 프리기아(Phrygia)로 통하며, 동남쪽으로는 빌라델비아에 이르는데, 또 거기서 여러 도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아디라보다 더 교역이 왕성하였고, 강을 끼고 높은 산에 위치하고 있어서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도시 역사상 두 번만 남의 나라에 점령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한번은 페르시아의 고레스(Cyrus) 왕에게 주전 549년에, 또 한번은 약 300년 후에 헬라(그리스) 제국의 알렉산더(Alexander) 대왕과 안티오커스(Antiochus) 대왕에게 점령되었었다고 합니다. 또한 주후 17년에는 큰 지진으로 인하여 도시가 파괴되었었는데 로마의 디베랴(Tiberius) 황제에 의하여 재건되기도 했습니다. 종교적으로 많은 우상신들과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있었으나, 특히 키벨레(Cybele)여신을 숭배하는 사람이 많아 그 여신상이 있는 신전이 도시 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사데교회는 에베소교회처럼 교리적으로 아주 정통(orthodox)을 지켜온 교회였습니다. 이단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일곱 교회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가장 심한 책망을 듣고 있습니다. 이유는 사람들 보기에는 평판이 좋았지만, 살았다 하지만 실제는 죽어있는, 잠자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말입니다.

   먼저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이지만 일곱 교회에 일곱 천사를 통하여 각각 보내신 성령이기에 그렇게 표현하였고(계 1:4), 일곱 별은 일곱 교회를 가리키는데(계 1:16,20) 주님께서 친히 주장하시고 다스리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이 올바른 정통 교리를 갖고 있는 사데교회를 향하여 왜 죽었다고 하였을까요?
   본문에 의하면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2절하)라고 하였으니, 그들은 머리로는 정통교리를 알고 있었어도 행동으로는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많은 사람이 모여 장엄하게 드렸는지 몰라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서로 친목하며 교제하는 일에는 잘 모이는데 교회 자체에 생명력이, 역동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 어떻게 해서 성령의 역사가 멈추게 되었을까요? 교회나 성도들이 언제 이런 위기에 부딪힐까요? 내용보다 형식에, 내적인 것보다 외적인 것에 치중할 때입니다. 습관적인 예배, 타성에 젖은 예배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예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또한 행함이 없는 이론적인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입술로만 믿을 때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위선적인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열심을 잃어버린 때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제도입니다. 교회도 유기적인 조직체로서 어떤 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교회가 교회답게 그 기능을 돕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지, 제도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면, 교회는 직분자를 잘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감당하기 위한 직분이어야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를 나타내는 명예를 위한 직분이 될 때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게 됩니다. 교인들을 돌보지도 않으면서, 행실에 본이 되지 않는 지도자들, 즉 장로나 안수집사를 세우는 것부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막는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 잠자는, 성령의 역사가 멈춘 사데교회에게 우리 주님은 다섯 가지 명령을 합니다.

   첫째는, ‘깨어라’고 명합니다. “너는 일깨워”(2절상)라고 하셨습니다. 원어에 의하면 명령형으로 “Wake up!” 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에베소교회에게도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엡 5:14)고 주님께서 명령하신 적이 있습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파수하라는 뜻입니다. 파수꾼이 잠을 자고 있다면 전투에서 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는 우리의 약점을 경계하라는 뜻이 됩니다. 나쁜 습관, 기질, 말의 실수, 육체의 가시 등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에 정직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장점도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장점에 대한 과신, 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일도 장담하면 안됩니다. 성경에도 스스로 섰다고 생각할 때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12). 그리고 생산적이지 못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면 안됩니다. 전혀 효과적이지 않은데 자존심으로 붙들고 있는 것이 바로 영적으로 죽은 일을 붙드는 것입니다.

   둘째는, ‘굳게 하라’고 명합니다.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2절상)고 하셨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언뜻 그 의미가 들어오지 않습니다만, 정확한 번역은 ‘이제 죽을 지경까지 왔는데 남아 있는 것들이라도 굳세게 하라’는 뜻입니다. 죽을 때가, 심판의 때가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주님 만날 준비를 하고 남은 시간과 정력을, 남은 자원을 굳게, 강하게 하라고 합니다. 주님 앞에서 상황 판단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굳게 하라’는 단어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양육할 때, 훈련시킬 때 쓰여진 단어입니다. 어린 신자들에게 영적 양식을 먹이며, 사랑으로 돌보며 굳게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훈련을 받으라고 합니다. 마지막 날을 대비하라, 영적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령입니다.

   셋째는, ‘생각하라’고 명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3절상)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어떻게 성령을 받았으며, 십자가의 복음을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하라, 기억하라(Remember)는 말씀입니다. 처음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체험하고, 믿음으로 살고자 한 때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직도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을 생각하라, 너희 몸이 성령의 전임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고전 6:19). 받은 구원을, 받은 성령의 은사들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넷째는, ‘지키라’고 명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3절상)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지속적으로 말입니다. 말씀을 실천하려고 몸부림을 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께 헌신하는 마음으로, 충성심으로 말씀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입으로만 말고 삶으로 보이라는 말입니다.

   다섯째로, ‘회개하라’고 명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3절상)고 하셨습니다. 4절에 보면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을 향하여 옷을 더럽힌 자로 표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새로운 옷을 입은 그들이었는데, 그 옷이 더럽혀져 있으니 씻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앞에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있으면, 잘못된 태도나 행동이 있었으면 회개하고 고치라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잠자는 상태에서 깨어나 새로운 전환을 꾀하라는 말입니다.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3절하)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언제 우리를 부르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도적이 언제 오겠다고 예고하지 않고 갑자기 닥치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두아디라교회처럼 사데교회에도 몇몇 옷을 더럽히지 않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몇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4절)고 하셨습니다. 소수의 무리이지만 깨어 있어, 믿는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기도로, 사랑으로, 증인의 삶으로 죽은 교회 안에서도 성령의 불길을 끄지 않으려고 애쓰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과 늘 동행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거룩한 삶, 온전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자들이었습니다. 여기 ‘합당한 자’의 뜻은 보배롭고 귀중한 자, 영예로운 자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 때문에 사데교회에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잠에서 깨어나 회개하고 사명을 감당하면, 주님 재림하시는 종말에 나타날 분명한 세 가지 사실을 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첫째로, 흰 옷을 입게 됩니다(4절). 사도 요한에게 환상 가운데 보여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보좌 주위의 24 보좌에 앉은 24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계 4:4), 주님을 위하여 순교한 성도들에게 흰 두루마기가 주어지는 것처럼(계 6:11), 아니 그 곳의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계 7:9) 말입니다. 참된 성도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둘째로, 생명책에 이름이 확실히 기록되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의 영원한 확신입니다. 영원한 보장(security)입니다. 물론 이 말씀이 한번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 신앙을 잃어버려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없어질 수 있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말을 보증해 주는 구절이 아닙니다. 정말 구원의 확신을 가졌던 신자는 분명히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피 흘리신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계 13:8, 21:27). 즉 진실로 구원 받은 성도가 탕자처럼 멀리 하나님을 떠날 수는 있지만,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데교회에도 오늘 같은 말씀을 들은 신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 이름이 이미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처음부터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셋째로는,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천사들 앞에서 그 성도들을 시인합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 시인할 것이요 만일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2-3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믿는 자답게 행동함으로 입으로 시인한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삶, 그것이 축복의 삶이요, 영광의 삶이요, 상급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존경하는 Charles Swindoll 목사님은 오늘날 영적으로 죽어있는 교회의 특징을 다섯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1) 화려했던 과거를 자랑하며 찬양하는 교회, 2) 융통성이 없어서 변화하기를 주저하는 교회, 3) 지도자들이 게으르고, 육체를 좇아 인도하는 교회, 4) 어린아이들과 학생들을 무시하는 교회, 5) 전도와 선교에 관심이 없는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과거를 먹고 살지는 않습니까? 전혀 변하는 모습이 없지는 않습니까?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게으름이, 육신을 좇는 모습이 없습니까? 유년주일학교와 중고등부 학생들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전도하고 있습니까? 선교에 열정이 있습니까?
   사데교회를 죽었다고 책망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살아 숨은 쉬고 있지만 영적으로 잠을 자는 모습은 아닌지요? 정통 교리를 주장하면서 생활에는 빛된 삶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까? 외적으로는 같이 예배도 드리고, 찬양도 하고, 신앙고백도 하지만 내적으로 부패하여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옆 사람과 함께 신앙생활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니 심판의 자리에 가 있게 되지는 않겠습니까?
   제발 깨어 나십시오. 남은 인생을 굳게 하십시오. 양육을, 훈련을 받으십시오. 어떻게 복음을 들었고, 성령을 비췸을 받았는지, 그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을 붙잡고 지키십시오.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이 있었다면 회개하고 돌아서십시오.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전할 메시지는 정통, 보수를 지키지만, 전도의 방법은 현대에 맞게 변화를 꾀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 마귀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우리 주님께서 흰옷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흐려지지 않습니다. 남은 자들, 이긴 자들을 주님께서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 교회에는 사데교회에 있었던 몇몇 남은 자들, 합당한 자들이 대부분의 성도들이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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