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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2-25 (월) 08:1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78    
열린 문을 두었으되(계 3:7-13)


우리는 새 성전 시대를 맞이하여 전도에 열심을 내려고 합니다. 전도하여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해내는 일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새 성전 건물도 우리 주위에 여러 모양으로 힘들어 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소망을 주고, 신랑 되신 예수님께 중매하라고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려면 우리 주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가운데 주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주셔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한 교회가 바로 오늘 본문의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와 함께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만 들었던 교회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사데에서 남쪽으로 약 28마일 떨어진 데에 빌라델피아 도시가 있었습니다. 형제 사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빌라델비아(Philadelphia)는 당시 세 나라, 즉 무시아(Mysia)와 루디아(Lydia), 프리기아(Phrygia)의 국경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즉 동방의 관문이었습니다. 서방 헬라(그리스)의 언어와 생활양식, 문명을 동쪽 프리기아 왕국의 미개지역에 전달하기 위하여 건립된 도시였습니다. 지난 주일에 주후 17년경에 사데가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했는데, 그 때 빌라델비아는 완전히 파괴되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디베랴(Tiberius) 황제는 사데는 재건을 하도록 했는데, 빌라델비아는 해주지를 않아서 시민들이 황제에게 탄원을 하여서 도시가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종교적으로는 많은 우상신들, 그리스 신들이 들끓어 작은 아덴(Athen)이라고 까지 불리웠습니다.
   이런 도시에 자리잡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하여 우리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8절상)고 하십니다. 열린 문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혹자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계 4:1)의 말씀으로 천국의 문, 하늘나라 입구를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만큼은 그 천국 문을 열어놓았기에 아무도 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또 다른 해석인 복음전도의 문, 그 기회를 열어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그 교회에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세 나라의 국경에 자리잡은 빌라델비아에 위치한 이 교회가 전도하고 선교할 수 있는 문을 주님께서 열어주신 것입니다. 마치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도할 문을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4:3)고 바울이 골로새교회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처럼, 또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므로”(고후 2:12)라고 했고,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행 14:27)라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비록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좁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어도(마 7:13-14),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문이 열려져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요즈음도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문이 닫힌 곳이 있습니다. 저 북한 땅이나 모슬렘권의 대부분의 아랍 나라들은 문이 닫혀 있습니다. 또한 어떤 곳은 열려 있는 것 같으나 마음의 문들이 닫혀 있어서 전도의 기회를 찾기가 어려운 적이 많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주신다면 얼마나 축복이겠습니까?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주님께서 저들을 믿음 생활을 보시고, 어떤 교인들인지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8절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저들에게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은. . .

   첫째로,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수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약한 교회였습니다. 교인들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유력하고 힘있는 사람들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무슨 큰 일을 하기에 여러 가지 애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를 향한 충성과 열정으로 말씀을 지키며 행하고 살았기에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10절에서도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즉 힘들어도 인내하면서 말씀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만큼은 지키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십니다. 상징적으로 마지막 때에 온 세상에 임할 대 환난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불신자들, 사탄 마귀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시험의 때를 그들은 면하게 됩니다.
   그러면 말씀을 지킨다는 뜻이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고 하였습니다. 또 주님 안에 거한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요일 3:24)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응답을 받으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복음으로 인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약하다고, 힘이 없다고, 믿음이 작다고 변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불순종의 모습은 없습니까? 비록 적은 능력이지만 성실하게 말씀을 지키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주님 사랑하십니까? 주님 안에 거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믿음으로 넉넉히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사탄의 공격에도 흔들림이 없었고 오히려 승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적은 능력의 약한 교회였지만 내적으로는 아주 강한 교회였습니다. 말 그대로 외유내강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보라 사탄의 회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에도 그런 무리들의 핍박이 있었는데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이라 하지만 구약의 말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도, 이방인들에게까지 구원의 빛이 비추일 것이라는 말씀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가리켜 사탄의 회라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공격을 하고 핍박을 해도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대항하여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 몇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오히려 그들 앞에 절하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사탄 마귀들의 공격에, 핍박과 유혹에 흔들리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그런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하나님께 여러분의 믿음을 보여드리며 승리하여 전리품으로 드릴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하는데, 내 남편이나 아내가, 형제들이나 친지들이 나를 무시하고 조롱할 때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이 신앙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증거가 됩니다. 고난 가운데 신앙 생활하는 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의 신앙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면 미워하고 반대하던 사람들 중에서 이 사랑에 감동되거나 신앙 인격에 마음이 녹아져서 신앙을 인정하게 될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을 가지고 연단 받는 사람은 굳이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때가 되면 주님께서 인정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물론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렇게 승리하게 되어 칭찬을 들은 비결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님입니까? “빌라델비아 교회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가라사대”(7절)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주님의 성품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순교한 성도들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않으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니이까”(계 6:10)라고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도 그 성품을 의지합니다. 우선, 우리 주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죄를 싫어하시는,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진실하신 분, 참된 분입니다. 거짓을 모르는 분입니다. 이 세상에는 거짓이 난무하지만, 가짜가 많지만 우리 주님은 진짜, 참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신 약속의 말씀들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7-18)고 하였습니다. 또한 주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장하는 분입니다. 7절에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이사야 22장 20-25절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다윗의 후손인 유다 히스기야 왕이 당시 국고와 궁의 모든 물건을 관리하던 셉나가 타락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할 때에 그를 물리치고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에게 다윗의 열쇠를 주고 앗수르의 랍사게와 협상을 벌릴 때에 왕의 모든 권세를 그에게 일임한 구절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우리 주님께 일임을 한 것입니다(마 28:18). 우리 주님은 인생의 결정권을, 절대주권을 가진 분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열쇠라 함은 서론에서 언급하였듯이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천국 문을, 전도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것을 우리 주님께서 갖고 계셔서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어줄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그 열쇠로 복음전도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정말 부러운 말씀입니다. 또한 소망의 말씀입니다. 우리도 약하지만, 적은 능력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별 볼일이 없는 것 같지만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서 복음전도의 문을 열어주시면 놀라운 부흥을 체험하리라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런 놀라운 부흥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첫째, 주님의 능력만을 의지하면 됩니다. 자신들을 볼 때에는 약하고 적은 능력의 교회였지만 저들은 크신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숫자가 많다고 강한 것은 아닙니다. 재정이 풍부하다고 강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불신앙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약하게 하시는 이유는 더 이상 우리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더욱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전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한 순종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 사랑한다면 충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씀을 붙들게 되어 있습니다. 듣기만 하고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고, 정말 행하셔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절대로 주님을 배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것을 칭찬하였습니다(8절).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느 누구 앞에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분들이라면, 언약을 맺은 분들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비록 이 세상에서 불신자들은 종종 배신하고 의리도 없이 살지만, 여러분들은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주신 십자가를 달게 지고 CORMADEO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신 후 권면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11절)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속히 다시 오실 테니 가진 것을 더욱 굳게 하라고 합니다. 적은 능력이지만 주님의 크신 능력을 의지하고 말씀을 붙들고 더욱 힘쓰라고 합니다. 그래야 상급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과거에 일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지금 실패하면, 자기 자랑이나 하고 교만하게 되면 면류관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끝까지 사람을 기쁘게 하지 말고 주님이 사랑하는 교회로, 자녀로 남기 위하여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화롭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12절)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둥이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야 돌로 된 기둥이 있겠습니까? 지진을 경험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무슨 말씀인지 그 의미를 알았습니다. 성경에는 이 기둥을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신실하게 살았던 성도들에게 비유하였습니다. 마치 바울이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갈 2:9)라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그 기둥에 하나님의 이름 곧 소유된 백성이라는 인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 곧 승리의 시민권과, 주님의 새 이름 곧 구속의 주님의 이름을 기록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동일한 의미를 삼중적으로 강조하시면서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도 지금은 약하지만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말씀을 힘써 지킴으로 주님께서 복음전도의 문, 선교의 문을 활짝 여실 것으로 믿고, 빌라델비아 교인들처럼 이미 가진 진리의 말씀을 굳게 하여 귀한 상급을 누리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여! 복음을 전하는 문, 하나님 사랑을 전하는 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문을 열어주옵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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