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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1-23 (월) 06:4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97    
영적 전쟁(3)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
지난 주에는 이 세상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굳게 서야 하는데, 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천지창조가 있기 전에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어 다른 천사들로부터 영광을 가로채려던 사탄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이 땅에 내려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죄에 빠뜨리는 데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그 이후 계속하여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과 부활까지 방해하려고 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는 오늘도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멸망의 구렁텅이에 함께 하려고 온갖 궤계를 사용하여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이 마귀들과 싸우는 영적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의 무기를 가지고 싸워야 승리를 맛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의 사는 날들이 악한 날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바로 서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부터 몇 주일 동안은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각 요소들, 여섯 가지의 무기 하나씩들을 살펴보며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6장 14절 상반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군인들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들의 군복은 가운과 같은, 때로는 신발까지 내려오는 원피스로 된 옷이었습니다. 전쟁할 때가 되면 군인은 허리 띠를 메어 몸을, 특히 발을 잘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띠에 검을 차고 방패를 연결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에서 허리가 아주 중요하듯이 허리띠는 모든 무기를 연결하는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하는데 제일 먼저 필요한 준비입니다. 다른 무기들을 확고하게 잡아줍니다.
   "진리(truth, ajlhqeiva)"는 근본적으로 참된 하나님 말씀의 내용(content)을 말합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이 세상 모든 일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이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성도들의 영혼 속에 경험된 객관적인 진리입니다. 이 경험된 진리인 성경 말씀의 내용이 성도들에게는 사탄의 궤계를 물리치는데 가장 기초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삶의 기쁨, 의미, 장래, 가족, 심지어 여러분의 생명을 위협하는 마귀와 싸우려고 할 때에 진리의 허리띠를 빼놓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진리를 비틀어 혼란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탄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고 하셨습니다. 사탄에 대한 모든 것은 거짓입니다. 그래서 이 거짓으로 세상을 혼란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가 없는 분입니다(딛 1:2, 히 6:18).
   점점 이 세상은 이 객관적인 진리를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더 이상 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배우지 않습니다. 아니 가르치지 못하도록 합니다. 18세기의 이성주의 철학이 세상에 파고든 이후부터 우리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네 생각과 다르다", 혹은 "그것은 당신의 이론이고 의견이다 내가 꼭 동의할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하는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느낌이 중요합니다. 감정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적인 진리를 주장합니다. 당신에게 참된 진리가 반드시 나에게도 참된 진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진리는 그들의 의견이요, 이론이요, 아이디어입니다.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믿을 수 없지 않습니까? 왜 그렇죠? 우리의 생각, 느낌, 의지가 애초부터 비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이 진리의 성령에 의해 바로 회복되어야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고전 2:10). 그러므로 마귀가 여러분의 허리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의 띠가 없는 것을 보면 바로 여러분을 치고 들어옵니다. 육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진리를 인정하면서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모순 속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다 사탄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리로 허리 띠를 띠고"라고 할 때에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전적인 헌신, 절제(dedication or discipline)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허리띠를 띠고 하는 표현이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벧전 1:13)에 쓰였습니다. 마음, 정신적 준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을 위한 준비를 마친 헌신된 군인과 경기를 위한 준비를 마친 헌신된 운동선수들처럼 진리의 말씀으로 준비를 마친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진리로 허리띠를 띤 자들입니다. 만약 없어질 이 땅과 사람들을 정복하려는 군인들이나, 경기에서 이겨 썩을 면류관을 받기 위하여 자신들을 훈련하며 절제하여 온전히 드리는 운동선수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승리와 썩지 않을 면류관이 보장된 전쟁을 위하여 얼마나 훈련과 절제로 온전히 헌신되어야 하겠습니까? 물론 방만하고 나태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도무지 이러한 허리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몸을 속박하는 이러한 허리띠는 싸움에나 편리하지, 죄악의 낙을 즐기며 살아가는 방탕한 삶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전장에 나가지 않고, 왕궁에서 희희낙락하는 군인들에게는 허리띠가 필요 없습니다. 긴장이 없으므로 허리를 졸라맬 이유가 없습니다. 진리가 그를 붙잡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방자히 행합니다. 이 세상의 절제할 줄 모르는 육신의 욕망이 그를 다스립니다. 아무리 삼켜도 꺼질 줄 모르는 불길과 같은 정욕, 이것에 붙들린 사람의 삶, 세상의 특징이요, 마귀의 종된 삶이 아닙니까? 육신의 욕망의 불길은 너무나 강렬하여 양심이라는 물로도, 도덕이라는 물줄기로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법 혹은 지성이라는 담장으로도 불길을 그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에 헌신되면 마음이 늘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하였지요. 우리의 느낌이나 감정보다는 진리의 말씀이 앞서 가야 사탄을 이깁니다.
   여러분들은 진리로 허리 띠를 동이셨습니까? 진리에 사로잡히기를 바랍니다.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선포되는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를 찾기 위하여 갈망하는 눈을 가지십시오. 마음과 생각이 진리의 말씀에 붙들리기를 바랍니다(신 11:18, 시 119:11). 자주 자주 진리의 내용을 알기 위하여 열심을 내십시오.

둘째, 의의 흉배입니다.
   14절 하반절에 "의의 흉배를 붙이고" 라고 하였습니다. 이 흉배(breastplate)는 당시 군인들이 가슴에 차고 다니던 것이었습니다. 로마군인들은 절대로 이 흉배를 빼놓고 전쟁에 나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심장이 있는 가슴을 보호하는 것으로 놋쇠나 단단한 가죽, 혹은 금속으로 된 가느다란 사슬 같은 것을 엮어서 만든 것을 가슴에 매달고 다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righteousness)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옮겨(position), 의를 행하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이 영적 전쟁에서 여러분의 심장, 가슴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무기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여러분이 처음 믿음으로 구원받을 때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처음 구원받을 때에 일어나는 일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으로만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죄를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한 의가 주어졌습니다. 그 의가 전가되었습니다(imputed, deposited). 그래서 아직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눈에 의인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오늘 의인이 되어야지' 하고 결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나는 의인이 되었다' 라고 생각하고, 그 의를 힘입고 살면 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영적 전쟁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누군지, 그 신분을 자꾸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의를 갖고 사는데 실제 삶에서 그 의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심령이 깨끗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릅니다. 죄에 대한 관점이 하나님이 보는 관점과 일치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은 누구를 미워하는 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길 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살인죄와 동일하게 보셨습니다(요일 3:15).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실 때에 회개해야 합니다. 물론 사탄은 죄를 죄로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말씀과 기도로 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의 가장 큰 취미는 여러분이 행한 죄에 대하여 고소하며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죄를 자백하고, 그 죄에게서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의를 행할 수 있도록 회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를 해결한 후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의를 행해야 합니다.
   즉, "의의 흉배를 붙이고"라는 의미는 "이미 갖고 있는 예수님의 의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삶에 실제 나타나고"라는 뜻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4-27) 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주님의 의와 자신의 의로운 삶의 관계를 잘 표현하였습니다. "내가 가진 의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9-12)고 하였습니다. 이미 주어진 예수님의 의는 오직 주님께 순종함으로 실생활에서 거룩한 삶으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즉 의의 흉배를 붙인다는 말씀은 여러분들이 매일 매순간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에 마귀는 여러분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아니 이미 맺은 열매를, 상급을 잃어 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또한, 가슴에 의의 흉배를 붙인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영적 전쟁에 나가는 군인의 가슴에 무엇으로 가득차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영적 전투에 임하는 성도의 가슴은 하나님의 의로 가득차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의에 대한 열망으로 타오르는 가슴을 지닌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전쟁의 목표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가 온전히 이루어 지도록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탄은 이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공작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부패와 타락 속에 애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때는 풍성한 열매로 주인을 기쁘게 하던 나라가 이제는 황폐하게 되어버린 이스라엘을 향하여 호세아 선지자는 말하기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내리시리라"(호 10:12)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간절한 선지자의 바램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가슴도 이 땅의 황폐함을 보고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며 의로운 심령의 뜨거운 열망이 있습니까? 아니면 부패한 주위를 바라보고도 그저 차가운 가슴으로 모른 척 하십니까?
   의의 흉배를 붙이십시오. 의의 흉배를 붙이지 아니하면 사탄, 마귀들이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도록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방해를 받고 끊어질 수 있습니다. 이미 허락하신 주님의 의로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로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주위에도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은 전쟁을 치르기에, 신속하고 민감하게 마귀를 대적하도록 허리 띠를 졸라 매셨습니까? 여러분들의 삶이 진리의 말씀에 붙잡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심령에 있어서 그 의가 실제로 나타납니까? 가슴이 하나님의 의로 가득차 있습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에서 나오는 여섯 가지 무기 가운데 오늘 두 가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였습니다. 늘 진리의 말씀을 향한 간절한 소망으로, 그 진리의 말씀에 사로잡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여러분의 실제 경험함으로 참 진리로서 자신 있게 세상과 대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말씀을 잘 알아야 하고, 세상 진리로부터 잘 구별하는 영분별력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헌신의 마음이 요구됩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맛보기 위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이미 주님의 의를 입은 의인으로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의로운 삶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슴이 하나님의 의로 불타오르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기다리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갈망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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