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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9-05-28 (목) 07:0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59    
[5/24/09] 변화된 삶
변화된 삶 (사도행전 22:17-29)
애벌레(caterpillar)가 나비(butterfly)가 되려면 껍질을 벗어야 하는 놀라운 변화, 극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계속 땅에만, 나뭇가지에만 기어 다녀야 합니다.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것이 어떤 것인지 평생 모를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 심령에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지 못하여서 늘 땅의 삶에 연연하며 사는 목숨들이 있습니다. 이 땅의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삽니다. 이 세상에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모릅니다.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의 세계가 있음을 모릅니다. 그저 땅에 속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나비처럼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하늘의 사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적인 세계에서 영적인 세계를 맛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을 알고, 맛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입니다.

사도행전 22장 1-16절 강해에서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회심하게된, 변화받게된 사실을 9장에 이어 또다시 간증하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율법주의자로서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핍박하던 애벌레 사울이 어떻게 하여 예수님을 증거하는 나비로, 사도 바울이 되었는지 본인 스스로의 입으로 예루살렘 유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간증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17-18절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환상 가운데 들은 주님의 계시의 말씀을 적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바울의 증거를 듣지 않을 테니 속히 이방인을 향하여 떠나라는 명령이었습니다(21절에서도). 그러자 바울이 주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 행한 모든 행동에 대한 회개가 나옵니다.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19-20절)! 주님을 만나 회심하고 변화 받고 보니 땅의 것이 전부인 줄 알던 애벌레 시절에 행했던 모든 것들이 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이런 감동적인 간증을 하면서 예수님이 정말 살아계시고, 유대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응은 바울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바울을 죽이려고 난동을 부립니다(22-23절). 특히 23절에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라고 한 것은 바울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모독한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옷을 찢고 티끌을 공중에 날려 하늘의 저주를 부르며 돌로 치려 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바로 예수를 믿는 자들에 대한 미움과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은 애벌레로 땅에 기고 있는데, 자기들보다도 형편 없다고 생각한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나서 하늘을 나는 성령의 능력이, 기적이 그들에게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개 같이 여기는 이방인들에게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게된 이방인들이 많아지게 됨을 유대인들이 미워하고 시기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지, 이웃들은 이상하리만치 신자들에게 대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을 날고는 싶은데, 예수님의 손에 붙잡히기는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괜히 이미 주님의 손에 붙잡혀 하늘을 나는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본성적으로 사람들은 주님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기를 싫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도 바울을 꺾듯이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변화 받기 전에는 주님의 손에서 자꾸 도망치려는 미꾸라지의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난 후에는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고 주님의 손에 붙들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그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변화를 받아 주님의 손에 붙들리는 그 순간 하늘을 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능력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미 체험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분들은 믿고 주님의 손에 붙잡히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의 간증이 끝이 나자, 유대인 무리들이 난동을 일으키며 바울을 죽이려고 하자 로마 군대 천부장은 바울이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영문 안으로 데리고 가서 채찍질하며 신문하려고 했습니다(24절). 그 때 바울은 옆에 있는 백부장에게 로마 시민권이 있는 사람을 죄가 있는지 확실히 알아보지도 않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25절). 깜짝 놀라서 상관 천부장에게 고하니, 27절 이하에 천부장이 바울에게 정말 로마인이냐고 물으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는 돈을 많이 주고 로마 시민권을 샀는데, 유대인인 네가 어떻게? 너도 돈을 많이 주고 샀느냐? 그래서 지금은 파산을 당하여 이렇게 어려운 것이냐?’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그게 아니라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라고 답합니다(28절하). 아마 다소에서 바울의 선조가 이미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여 바울은 자동적으로 태어날 때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자 천부장은 채찍질을 멈추게 하고, 오히려 그를 결박한 것조차 두려워합니다(29절). 로마 시민권자를 죄가 확실히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그렇게 결박하고 채찍질하는 것은 엄청난 잘못을 범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천부장은 공식적인 청문회를 갖기 위하여 유대인 지도자들로 구성된 산헤드린을 소집하고, 바울에게 소명할 기회를 줍니다(30절 이하).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 때문에 유대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로마까지 가게 됩니다.
하지만 나중에 바울은 로마 시민권의 특권보다 하나님 나라 시민권의 특권이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난 축복임을 증거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0-21)고 하였습니다. 로마 시민권도 대단하지만, 하늘나라 시민권은 상상을 초월하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축복도 유익하지만, 저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축복은 잠시 잠간의 유익이 아니라, 영원한 유익이요 죄와 상관이 없는, 고통과 상관이 없는 유익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 그 자녀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이미 소유한 자라는 말입니다. 잠시 기다리면 주님께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들에게서 죄를 완전히 몰아내어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화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비가 아니라 독수리처럼 저 높은 창공을 휘저으며 날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그 시간이 되기까지 우리는 영적 싸움을 싸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긴장해야 합니다. 이 땅의 나라와 하늘나라, 두 나라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여기가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권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세상이 인정해 주면 다행이지만 인정해 주지 않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 너무 세상에 잘 적응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너무 잘 적응이 된 사람은 하늘나라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처세술과 임기응변에 능하다면 그는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이 땅에 속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 사는 것은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공의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불의를 물리치시고 정의와 공평을 회복시키실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삶에서도 우리 성도들이 평안을 누리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이 세상을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허락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에게 이 땅에서도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세상적인 힘, 권력, 돈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주님의 손에 내어 맡긴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금방 망할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긴장해야 합니다. 단 하루라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잠시 은혜를 체험해도 또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땅의 시민권이 아니라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변화 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아직 이 땅이, 이 세상이 좋고 하늘나라에 대한 것에 관심이 없다면 여러분은 아직 변화 받지 못한, 하늘나라 시민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과 그 영광보다, 이 땅의 즐거움과 영광을 더 사모한다면 아직 애벌레인 것입니다. 물론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들도 이 땅에서 직장, 사업, 학식에 열심을 냅니다. 하지만 그 열심은 이 땅의 삶의 방편으로서, 고상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주님을 기쁘게 하며 하늘나라에 쌓을 상급을 위하여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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