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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해경
작성일 2009-10-15 (목) 05:1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68    
[10/11/09] 인생 항로에서 광풍을
인생 항로에서 광풍을 (사도행전 27:1-26)-- 한태일 목사

우리 인간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좋지 않은 일들을 만나 큰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배를 타고 항해하다가 광풍을 만날 경우입니다. 하지만 조금 지혜로운 사람들은 때로 광풍을 피해갈 수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만나는 광풍이야 할 수 없습니다만, 피할 수 있었는데 어리석게 생각하고 행동함으로 광풍을 만나는 적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고난이 없을 수는 없지만, 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지혜롭게 피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일부러 고난을 자초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일을 만나면, 두려움이 찾아올 때에면 의지할 사람을 찾습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위로를 얻기도 하고, 헤쳐나갈 길을 찾기도 합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을 찾아, 그의 말을 듣고 헤쳐나가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자들의 말을 듣다가는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기 위하여 가이사랴에서 몇 명의 죄수들과 함께 로마로 이송됩니다(1절). 당시 소아시아 항구들을 돌던 배는 작은 배였기 때문에 작은 배를 타고는 이달리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드라뭇데노에서 오는 배를 타고 어느 정도 가서 이달리야로 가는 큰 배로 갈아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 아드라뭇데노(Adramyttian) 배는 바울이 소아시아를 떠나 드로아에서 가까운 아드라뭇네노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배로서 소아시아 남부 연안 도시들을 연결하는 여객선으로 생각됩니다.

이번에 죄수를 호송하는 책임자는 율리오라는 로마군 백부장이었는데(1절하), 이 사람은 바울에 대하여 아주 호의적이었습니다. 이 전에 그에 대하여 들은 이야기가 있었거나 아마도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아드라뭇데노에서 온 배가 이튿날 시돈에 도착했을 때에 바울이 그곳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3절). 이는 파격적인 대우였습니다. 죄수를 풀어주어 배에서 내려 사람들을 만나게 하였으니 말입니다. 만약 그가 도망이라고 했다면 백부장 율리오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을 것을 각오한 것이었으니까요. 바울을 믿고, 좋게 생각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바울과 그 일행의 위기는 얼마 가지 않아서 닥쳐오기 시작합니다. 배가 구브로를 지나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러 이달리야로 가는 큰 배로 갈아타게 됩니다(5-6절). 이 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는 배로서 아마도 곡물을 운반하는 화물선이 아니면 무역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배는 본래 구브로 섬 아래로 항해할 예정이었으나 구브로를 지날 때에 바람이 심하게 불기 시작하여, 바람을 피하여 섬 위쪽으로 항해해서 무라성까지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계속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그레데 섬까지 와서 간신히 미항(Fair Havens)이라는 곳에 정박하게 됩니다(7-8절).

여기서 바울은 항해의 위험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백부장에게 더 이상 항해하지 말고 여기 미항에서 겨울을 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9-10절). 그것은 바울이 배를 타고 선교 여행을 한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었습니다. 물론 그에게는 성령이 주시는 영감, 통찰력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지중해는 금식하는 절기(대속죄일), 9월 말경이나 10월초부터 11월 중순까지는 항해하기에 위험한 시기로 알려져 있고,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 겨울까지는 태풍 때문에 항해 금지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디까지나 죄수의 신분이기에 이 항해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백부장은 바울에게 호의적이었지만, 항해의 중요한 결정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11절). 물론 그들은 항해의 전문가들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습니다.

사실 선장이나 선주는 욕심 때문에 바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습니다(12절). 미항은 아름다운 항구였지만 너무 작은 곳이어서 장사는 전혀 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뵈닉스로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기왕 겨울을 나는데 아무 것도 못하고 묶여 있기 보다는 기왕에 장사도 할 수 있고, 즐길 수도 있는 큰 도시 뵈닉스로 가기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욕심 때문에, 욕망 때문에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아니 오히려 가지고 있던 것까지 다 잃게 됩니다.

처음에는 남풍으로 순하게 가는 것 같아서 득의했지만 얼마 못가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던 것입니다(13-14절). 욕심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 것이었습니다. ‘유라굴로’라고 하는 말은 동풍의 헬라어와 북풍의 라틴어에서 유래된 합성어로 북동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광풍이 그들의 배를 사정없이 지중해 가운데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광풍에 밀려 가다가 ‘가우다(Cauda)’라는 작은 섬 아래을 지날 때에 겨우 ‘거루(life boat)’ 즉 배가 파선되었을 때에 타는 구조선을 잡아 끌어 올리고, 파도에 배가 부서지지 않도록 배 전체를 밧줄로 동여 매었습니다(15-16절). 그리고 17절에 보면 ‘스르디스(Syrtis)’에 걸릴까라고 했는데, ‘스르디스’라고 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모래톱(사주)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여기에 배가 걸리면 꼼짝 못하고 굶어죽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에 있는 무거운 연장들을 다 버리고, 모든 짐들도 바다에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기구들도 자기들 손으로 다 버렸습니다. 장사는커녕 살아 남지 못한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20절)고 하였습니다. 해와 별이 있어야 날짜를 계산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을텐데, 망망대해에 여러 날 동안 오직 바람과 파도만 몰아쳤기 때문에 배의 위치도 알 수 없고 날짜도 계산할 수가 없었기에, 오직 모두의 머리 속에는 죽는구나 하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가장 나타나기 쉬운 현상은 사람들이 의욕을 상실하고 자포자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서로 책임을 추궁하면서 다투고 엉뚱한데 화풀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누구의 조언을 듣느냐는 말입니다. 그 방면의 전문가의 말만 듣고 결정하다가는 광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11절에 보면 평생을 어부로 지낸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고서는 자신은 죄인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인생의 항로를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해석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들도 바울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 자의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음성, 그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자꾸 따지지 말고,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지 말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어야 합니다.

그러한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사도 바울이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21절하)고 합니다. 이 말은 비난이 아니고, 잘못을 인정하자는 말입니다. 나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광풍 가운데 큰 어려움을 겪게 하였다고 인정하고, 욕심을 부린 것에 대하여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성령의 감동으로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믿고 전합니다. 이번에는 꼭 자기의 말을 듣고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살아날 것이라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
2-25절)!

참으로 놀라운 위로의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광풍으로 지치고 굶어서 절망하고 있을 때 바울은 가장 분명한 어조로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을 확언했습니다. 여기서 왜 그들이 다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로마로 가는 목적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사로 로마 황제를 만나러 가야하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는 표면적으로는 죄수의 신분이지만, 이면적으로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신의 자격으로 로마 황제에게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에 탄 모든 사람의 생명을 바울에게 맡겼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울의 목숨을 지키시는 한 그 배에 있는 아무도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될 줄로 믿는다고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산다고 하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절망 중의 사람들이 소망의 빛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바울도 이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그 구체적인 과정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결과를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어도 현재의 불안과 공포를 떨쳐 버릴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생의 광풍을 만났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불안과 공포를 떨쳐 버릴 수 있는 믿음입니다. 약속의 소망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붙들고 있을 때, 약속의 말씀을 붙들 때 우리 가운데 평안이 찾아오게 됩니다.

단지 바울은 배는 건지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22절하). 배까지 건지려고 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 욕심을 내려다가 큰 일을 당했는데, 또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최선을 다하면 일단 목숨은 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건질 수 있으면 그 이후에 살아가는 것은 다시 믿음으로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깨닫고 돌아가셔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항로에서 광풍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합니다. 일부러 광풍을 맞을 필요는 없습니다. 광풍의 사인이 올 때에 조금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쉽게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고 살려고 합니다. 특히 곤경에 처하면 끄나풀이라도 잡으려고 말입니다. 그 때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자, 하나님께 신실한 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큰 광풍을 만나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절망 가운데 빠질 수도 있습니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성경책은 차 안에 두라고, 일주일에 한번 교회 갈 때에 갖고 다니기 위하여 있는 책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늘 가까이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광풍을 피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광풍을 만나셨습니까? 내게 무슨 잘못이 있나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무 쉽게 믿음이 없는 사람의 말을 들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혹시라도 욕심이, 욕망이 나를 광풍 속으로 몰아쳤나 돌이켜보며, 만약 그랬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소망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자의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아무리 큰 어려움을 만나도 사명이 있으면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원하시는데 왜 데려가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명을 붙드십시오. 하나님 나라 확장에 필요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그냥 데려가지 않습니다.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되십시오. 우리 주위에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지금도 어떤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사도 바울처럼 소망의 빛을 비추셔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의 항로를 주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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