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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12-10 (월) 07:20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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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064    
복음을 위하여(고전 9:15-127)


바울은 자신이 8장에서 한 말씀에 대하여 자신 스스로 본을 보이고 있음을 증거하였습니다(1-14절). 자신과 동역자 바나바도 자유인으로서 우상에게 제사드린 음식을 먹을 자유도 있고, 고린도교회에서 사례를 받을 권리가 있지만, 복음을 위하여 스스로 포기하고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도가 확실하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일하고 삯을 받는 것이 당연하며, 율법에서도 동물조차 일하면서 먹을 것을 허락하였고, 옛날 성전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그 백성들의 십일조와 헌물로 생활하였으며, 무엇보다 우리 주님께서도 주님의 양들이 사역자의 생활을 책임지도록 했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 마땅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사역을 하고 있다고 기록한 것이 고린도교인들이 자신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15절).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 . .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15절하)고 하였습니다. 즉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바울이 고린도에 있었을 때에 겪은 여러 경험들의 기억으로 감정이 격하여져 정상적인 방법으로 글을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 줄임표로 중단하였습니다. 어쩌면, 차라리 영혼을 얻는데 걸림돌이 될 바에야 재정적인 요구를 하지 않고 굶어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뜻 같습니다. 자신의 사도성을 증명하고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랑하는 데 사례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 ‘자랑’이라는 말도 자만의 의미보다 오히려 기쁨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마땅한 권리와 자유를 포기해도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16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아주 특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너무 귀한 것이기에 대접 받을 것을 생각하면서 한가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부득불 전해야만 하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대가를 받지 않아도 자신이 전하지 않아서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이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입을 열지 않으면 나중에 물으실 것입니다.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예수를 참으로 믿는 성도라면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원하여 값 없이 복음을 전하면 자신에게 상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 값 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17-18절)고 합니다. 즉 복음을 전하면서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는 것이야말로 훗날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가장 큰 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만약 이 세상에서 그 대가를 다 받으면 주님 앞에서는 상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어도 받지 않고, 포기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자아를 버리고, 자신을 부인하고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눈 높이에 맞추었습니다. 아니 그 영혼을 얻고자 종이 되어 섬겼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19절)! 아마 바울은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 11:30)는 말씀을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8장부터 믿는 자의 자유에 대하여 말해왔듯이 얼마든지 자유할 수 있지만 스스로 사람들의 종이, 즉 노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낮추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20절) 라고 함은, 자기가 유대인 척했다는 뜻이 아니고 자기도 유대인이라고 하면서 유대 혈통을 자랑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구약성경을 자신도 잘 알고 있었기에 구약성경을 가지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유대인들을 뜻하기도 하지만, 아마 유대교로 개종하여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는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개종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복음과 부딪치지 않는 규례, 규칙 등을 함께 지켜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이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라”(21-22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율법이 없는 자’는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처럼 한 평생 율법과 함께 살았던 사람이 전혀 율법과 관계 없는 자들을 사귀면서 어울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에게도 자신을 맞추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복음으로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약한 자에게는 약한 것을 인정해주며 그들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자신을 맞추었습니다. 부한 사람들에게는 부한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자신을 맞추었습니다. 많이 배워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똑똑한 사람인 것처럼, 배우지 못해 무식한 사람들에게는 무식한 사람인 것처럼 자신을 맞추었습니다. 이유는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23절)고 한 것처럼, 그래야 나중에 주님 앞에서 복음을 전한 상을 온전히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삶의 기준 자체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줏대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이지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그 표현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복음을 누구에게나 효과적으로 전하려면 자신은 죽어져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복음을 전하려는 겸손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믿는 자는 자기의 세상적인 자랑을 아무리 해도 감동 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랑을 듣는 사람은 그 속성상 시기 질투를 할 뿐입니다. 내 자랑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절제하였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말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고자 하노라”(24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종종 운동경기에 비유했었는데, 본문에서는 달리기 경주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달리기에서 승리하려면, 면류관을 받으려면 골인 지점인 목표를 분명히 하고 달리면서 절제를 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상을 받으려면 먹는 것을 비롯하여 절제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꾸준한 연습을 하려고 해도 생활에 절제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못합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상인,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도 운동선수들은 이렇게 절제하는데, 하물며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어야 할 우리가 절제하지 않아서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참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내 권리를, 자유를 얼마든지 포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썩지 않을 면류관을 위하여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27절)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여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 면류관을 향한 목표가 뚜렷하기에 무엇을 위하여 어디를 향하여 뛰는지도 모르는 자나 허공에다 주먹을 휘두르는 자와 같이 하지 아니하고, 어느 정도로 절제하느냐 하면 자신의 몸을 쳐서 온전히 주님께 복종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학대했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육체적인 본성, 정신적인 죄의 성향, 욕망을 성령께 복종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여기 마지막 절에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한다는 말이 자기가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결코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가 아닌 것을 입증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절제하지 못하면 전혀 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삼손은 자신을 과신하여 절제하지 못했습니다. 나실인으로서 금해야 할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자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혹에 넘어갔고 비참하게 되었었습니다. 육체의 욕망과 죄성이 발동하려는 것을 물리치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만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복음을 위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얻기 위하여, 아니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이 목표를 위하여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얼마든지 포기하십니까? 내 이익을 포기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다른 사람들의 눈 높이로 맞추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려고 하십니까? 사람들을 얼마나 넓은 마음으로 품으십니까? 어떤 사람의 부족한 점과 관심에 마음을 열고 대하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다 내려놓고,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종처럼 섬긴다면 그 사람이 감동을 받지 않겠습니까? 복음에, 십자가 사랑에 마음 문을 열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은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하여 그런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십자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렇게 노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절제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경주자의 삶입니다. 목표가 뚜렷한 경주입니다.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운동선수와 같습니다.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좀 아프더라도 힘들더라도 말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맨 마지막 열매가 절제입니다(갈 5:22-23). 어쩌면 그만큼 열매를 맺기 어려워서 마지막으로 언급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얼마 전에 감동적인 아래 글을 읽었습니다. 어린 초등학생의 기도문 형식의 간증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구로동에 사는 용욱이예요. 구로초등학교 3학년이구요. 우리는 벌집에 살아요. 벌집이 무엇인지 예수님은 잘 아시지요? 한 울타리에 55가구가 사는데요. 방문에 1, 2, 3, 4, 5...번호가 써 있어요. 우리 집은 32호예요. 화장실은 동네 공중변소를 쓰는데, 아침에는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해요. 줄을 설 때마다 저는 21호에 사는 순희 보기가 부끄러워서 못 본 척 하거나 참았다가 학교 화장실에 가기도 해요.
우리 식구는 외할머니와 엄마, 여동생 용숙이랑 4식구가 살아요. 우리 방은 할머니 말씀대로 라면 박스만해서 4식구가 다 같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엄마는 구로2동에 있는 술집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오셔요. 할머니는 운이 좋아야 한 달에 두 번 정도 취로사업장에 가서 일을 하시고 있어요.
아빠는 청송교도소에 계시는데 엄마는 우리보고 죽었다고 말해요. 저는 죄가 통 없는 사람인 줄만 알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 날은 제가 죄인인 것을 알았어요. 친구들이 우리 엄마보고  ' 술집 작부'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구요.
   예수님, 우리는 참 가난해요. 그래서 동회에서 구호 양식을 주는데도 도시락 못 싸 가는 날이 더 많아요. 엄마는 술을 많이 먹어서 간이 나쁘다는데도 매일 술 취해서 어린애 마냥 엉엉 우시길 잘 하고 우리를 보고 "이 애물 단지들아! 왜 태어났니... 같이 죽어버리자"고 하실 때가 많아요. 지난 4월 달 부활절 날, 제가 엄마 때문에 회개하면서 운 것 예수님은 보셨죠. 저는 예수님이 제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정말로 이해 못 했거든요. 매일 술 먹고 주정하면서 다 같이 죽자고 하는 엄마가 얼마나 미웠는지 아시죠. 지난 부활절 날 저는 '엄마 미워했던 거 용서해 주세요' 라고 예수님께 기도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모습으로 용욱아 내가 너를 용서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그만 와락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그날 교회에서 찐 계란 두 개를 부활절 선물로 주시길래 집에 갖고 와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드리면서 생전 처음으로 전도를 했어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구요. 몸이 아파서 누워계시던 엄마는 화를 내시면서 "흥, 구원만 받아서 사냐" 하시면서 "집 주인이 전세금 50만원에 월세 3만원을 더 올려 달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구원만 말고 50만원만 주시면 네가 예수를 믿지 말라고 해도 믿겠다" 하시지 않겠어요. 저는 엄마가 예수님을 믿겠다는 말에 신이 나서 기도한 거 예수님은 아시지요?
학교 갔다 집에 올 때도 몰래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 했잖아요. 근데 마침 어린이 날 기념 글짓기 대회가 덕수궁에서 있다면서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뽑아서 보내 주셨어요. 저는 청송에 계신 아버지와 서초동에서 꽃가게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던 때 얘기를 그리워 하면서 불행한 지금의 상황을 썼거든요. 청송에 계신 아버지도 어린이날에는 그때를 분명히 그리워하시고 계실테니 엄마도 술 취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살아주면 좋겠다고 썼어요.
예수님, 그 날 제가 1등 상을 타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시지요? 그 날 엄마는 너무 몸이 아파서 술도 못 드시고 울지도 못 하셨어요.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 오셨어요. 글짓기의 심사위원장을 맡으신 노 할아버지 동화작가 선생님이 물어 물어 저희 집에 찾아 오신 거예요. 대접할 게 하나도 없다고 할머니는 급히 동네 구멍가게에 가셔서 사이다 한 병을 사 오셨어요.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똑똑한 아들을 두었으니 힘을 내라고 위로해 주셨어요. 엄마는 눈물만 줄줄 흘리면서 엄마가 일하는 술집에 내려가시면 약주라도 한 잔 대접하겠다고 하니까 그 할아버지는 자신이 지으신 동화 책 다섯 권을 놓고 돌아 가셨어요. 저는 밤 늦게까지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동화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책갈피에서 흰 봉투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펴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수표가 아니겠어요. 엄마에게 보여 드렸더니 깜짝 놀라시며 "세상에 이럴 수가... 이렇게 고마운 분이 시다니" 말씀 하시다가 눈물을 흘리셨어요. 저는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께서 가져 오셨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주신 거예요'라고 말하는데, 엄마도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얘 용욱아 예수님이 구원만 주신 것이 아니라 50만원도 주셨구나" 라고 우시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할머니도 우시고 저도 감사의 눈물이 나왔어요. 동생 용숙이도 괜히 따라 울면서 "오빠, 그럼 우리 안 쫓겨나구 여기서 계속 사는 거야?" 말했어요. 너무나 신기한 일이 주일날 또 벌어졌어요. 엄마가 주일날 교회에 가겠다고 화장을 엷게 하시고 나선 것이에요. 대 예배에 가신 엄마가 얼마나 우셨는지 두 눈이 솔 방울만 해 가지고 집에 오셨더라구요. 나는 엄마가 우셨길래 또 같이 죽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겁을 먹고 있는데 "용욱아, 그 할아버지한테 빨리 편지 써. 엄마가 죽지 않고 열심히 벌어서 주신 돈을 꼭 갚아 드린다고 말이야"라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저는 엄마가 저렇게 변하신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고마우신 예수님! 참 좋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주신 수표는 제가 커서 꼭 갚을께요. 그러니까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동화 할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사시도록 예수님이 돌봐주세요. 이것만은 꼭 약속해 주세요.
예수님! 너무나 좋으신 예수님! 이 세상에서 최고의 예수님을 용욱이가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일의 확실한 소망을 붙잡고, 오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물을 주는 자, 비료를 주는 자는 때가 되면 거둘 때가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며 알고 계십니다. 정말 우리 주위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상처받은 영혼들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기 바랍니다. 종처럼 섬길 수 있기 바랍니다. 복음을 위하여! 영원한 상급을 위하여!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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