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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10-22 (월) 08:27
분 류 수요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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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052    
성결한 공동체(2) (신 21:1-23)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해야 할 가나안 땅은 온갖 더러운 죄악이 가득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땅을 정복하여 정결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계속 정결한 상태를 유지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유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성결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들판에서 도저히 살인자를 알 수 없는 시체를 발견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1-9절).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제사장과 함께 순전한 암송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시냇물이 흐르고 밭도 갈지 않고 심지도 않은 골짜기에서 그 암송아지의 목을 꺾어서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무죄한 자의 피를 그 백성에게 돌리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순전한 암송아지 한 마리가 대신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성결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또 다른 경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약한 여자의 문제와 패역한 아들의 문제입니다. 당시에는 여자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사회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배려하시면서 세상과 구별된 이스라엘 공동체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 버림을 받는 여자가, 더럽혀지는 여성이 많은 이유가 남자들이 여자들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도 보면 옛날에 아버지가 도박을 하여 빚을 지게 되면 딸을 파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우선 10-14절에서는 포로가 된 여자의 지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전쟁에서 포로가 되면 일단 노예로 팔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 전쟁 포로 중에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그 노예를 성 노리개로 사랑해서는 안되고 정식 아내로 책임을 지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 포로로 잡힌 여자는 가나안 족속의 여자는 아닙니다. 가나안 여인을 취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신 7:3-4).
먼저 포로로 붙잡혀 온 여자가 해야 할 것이 머리털을 밀고 손톱을 자르는 것입니다(12절). 이는 그 여자의 모든 과거 이방 관습을 버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자가 머리털을 민다는 것은 완전히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손톱을 자르는 것은 세상 풍습이나 세상적인 멋 부림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생각하며 한달 동안 실컷 울게 하였습니다(13절). 아마도 이 기간 동안에 부모님과 친지나 고향을 떠난 슬픔을 정돈하고, 앞날을 준비하며, 남편이 될 사람의 사랑의 진실성도 시험하는 기간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후에 그 남자에게로 가서 아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스라엘 남자는 그 여자를 노예나 포로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내로 대하여야 하지 그 여자가 싫어졌다고 해서 결코 돈을 받고 팔아 넘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14절). 즉 자신이 없으면 아예 아내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지, 한번 아내로 맞았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감정, 사랑의 감정만 가지고 결혼하면 안되고 검은 머리 하얗게 될 때까지, 아니 주님 부르실 때까지 책임지고 사랑할 각오를 하고 해야 합니다. 이미 결혼하신 분들은 서로에게 그렇게 책임을 지고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기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15-17절에서는 이스라엘 남자가 두 아내를 두었을 경우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남자가 두 아내를 두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하나님 말씀대로, 그 뜻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두 아내를 두었을 경우 아내들만큼은 책임을 진다 하더라도, 자식 사랑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자녀 차별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한 남자가 두 아내를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의 아들이 좋고 예쁘다 하더라도 미워하는, 아니 좀 덜 사랑하는 아내의 아들이 먼저 태어난 장자라면 장자로 인정을 하고 자신의 소유의 두 몫을 주라는 것입니다(16-17절). 한 아내를 더 좋아한다고 해서 실제적인 장자를 나두고 나중에 태어난 아들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차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실 부모의 잘못된 사랑 때문에 이 세상의 악이 만연하다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닐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부모가 자녀들을 공평하게 대하지 않고 어느 한쪽을 편애할 때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녀가 부모나 세상을 원망하게 되고, 불만으로 나타나 죄악의 길로 빠지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부모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다 타락한 죄인들입니다.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워도 그 안에 무서운 죄성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가르쳐야 합니다. 자꾸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언어의 장벽이 있습니까? 그래도 노력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절제를 가르쳐야 합니다. 훈련이지요. 어떤 라인은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계속 말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가 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뭐 잘못했다고 분노로만 대하면 자식들의 마음 속에도 분노가 가득하게 됩니다. 자식들은 자기 잘못은 잘 모릅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여 늘 합리화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계속 마음에 분노를 가지고 자녀를 대하면 그 자녀는 사회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의식을 가지고 대하게 되며, 나중에 결혼하여 자녀를 낳는다 하더라도 그 분노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면,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 자녀들에게도 분노를, 상처를 물려주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분노를 계속 품게 되면 성질이 나빠지고, 우울증도 생길 수 있으며, 정신병이나 자살의 충동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 자녀를 노엽게 말라고 했습니다(엡 6:4). 제발 자기 자식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소유하고 계신 한 인격체로 대하십시오. 여러분의 자아를, 욕망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 키워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불공평한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일단 똑 같은 것을 나눠주면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준다든지, 많이 준다든지 하면 그것을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만약 큰 애라서 더 많이 준다면 잘 설명을 해서 설득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 아내 가운데 덜 사랑하는 아내의 자식이 장자이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대로 더 많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공의롭기 때문입니다.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근데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얼마나 자기 아들을 장자 삼아서 더 복을 달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 하더라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해야 공평하게 되고 자식이 아버지를 존경하게 됩니다.

또한, 18-23절에서 성결한 공동체 안에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을 경우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물론 대게 자녀들의 잘못은 부모의 잘못에서 비롯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 자녀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고 하지요. 거꾸로 부모를 보면 자녀를 알 수 있다는 말도 되는 것 같습니다만 앞의 말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최선을 다하여 가르치고 키웠음에도 정당한 이유가 없이 자녀가 패역하고 방탕하여, 아무리 타이르고 좋게 책망을 해도 듣지 않으면 포기하게 하셨습니다(18-21). 공동체 전체를 위하여 그를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치라고 명하셨습니다. 물론 어느 부모가 자식을 그렇게 비참하게 죽게 하고 싶겠습니까? 부모는 절대로 자식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그 자식이 스스로 끝까지 악을 행할 때에는 자기 자식이기 전에 더 이상 하나님 백성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온 이스라엘이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이 마땅히 죽을 죄를 지어 나무에 매달게 되면 그 시체를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명하십니다(22-23절). 물론 매다는 까닭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죄악에 대한 경고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시체는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이었습니다(민 6:11). 그러므로 시체는 어떤 형태로든 거룩한 땅에 계속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가증한 범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나무에 매달려 죽임 당한 시체는 더더욱 당일에 묻어 그 부정함을 성결한 공동체로부터 제거하여야 했습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심도 바로 이런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본문 23절 하반절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 나라 백성을 삼으시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하여, 아니 성도라 부르시기 위하여서 우리 예수님께서 대신 저주를 받으셨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바로 이런 성결한 공동체가 옛날 하나님께서 원하시던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공동체 안에는 아내를 학대하거나, 어느 여자도 억울하게 버림을 당하거나, 자녀를 차별하여 분노케 하거나, 패역하여 자기 부모에게 대들거나 불순종하는 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시체를 그냥 그대로 두어 그 땅을 더럽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우리 교회를 먼저 거룩한 성결한 공동체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욕망을 절제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먼저 잃어버렸던 서로 간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교회 안에서 돈이 없다고 해서, 건강하지 않다고 해서, 못 배웠다고 해서 무시당해서도 안되고, 돈이 많고, 건강하여 힘세고, 많이 배웠다고 해서 대접 받으려 하며 큰 소리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차별당하지 않고, 억울함을 당하지 않을 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지역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만들어가는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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