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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7-09 (월) 05:0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34    
십자가의 도(고전 1:18-25)
요즈음 현대 교회들의 메시지가 소위 말하는 지성인들을 위한 교양 강좌나 윤리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니면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무슨 가정생활 세미나를 한다든가, 각종 세미나를 합니다. 아니면 목사가 성경 한 구절 읽고는 교인들 스트레스나 풀어주려고 농담으로 설교를 대신합니다. 혹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나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교인들이 치유나 위로의 말만 좋아하니까 자꾸 그쪽으로 치우칩니다. 설교에서 죄에 대한 지적은 사라지고, 십자가 보혈의 말씀을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빼 놓습니다. 오래 전에 가난할 때에나 무식할 때에 열악한 환경의 사람들이 믿었던 것이지, 오늘날과 같이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은 것으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을 선포하지 않습니다. 아마 옛날의 고리타분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믿는 것을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메시지가 교회에서 사라진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하더라도 그 교회는 이미 죽었고 하나님의 능력은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주후 1세기 사도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교회 안에도 그런 징조가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은 교만과 인간의 지혜에 대한 자랑이 고린도교회의 분열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종교성에 있어서는 큰 자부심을 가진 자들이었고,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 유명한 헬라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헬라인들은 지성에 있어서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의 도를,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처음 1차 전도여행 중에 바울이 아테네에서 소위 지성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할 때에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진리이기에 많은 헬라인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듣고 비웃었습니다.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을 전함을 인함이러라”(행 17:18)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8절)이라고 선포합니다. 여기 “도”라는 원어는 10절에 “말”로 번역이 된 단어와 동일한 원어입니다. 즉 십자가의 말씀, 그 메시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멸망하는”, “구원을 얻는” 모두가 다 현재 시제로 쓰여졌습니다.  즉 십자가의 메시지는 멸망을 향하여 가고 있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고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담당한 죽음이요, 나의 부활, 영생을 위한 부활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도가 지성인이라고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미련하게 보여서 믿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멸망,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위 지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만이 우리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롬 3:10-15, 시 14:1-3, 53:1-3)고 구약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죄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이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새롭게 되고 진정한 삶의 행복을 누리려면 십자가의 복음만이 해결책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이어서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19절)고 이사야서 29장 14절을 인용하면서, 사람이 아무리 세상에서 똑똑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지혜에 미치지 못함을 강조합니다. 이사야 선지자 당시에 유다 나라가 풍전등화와도 같은 상황 속에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유다가 살아남으려면 주위 이방 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교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지혜가 오히려 유다를 망하게 했습니다. 이유는 유다를 지키는 것은 이웃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지혜 있는 자의 지혜를 폐하며,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 인간들이 똑똑해지고 문명이 발달해서 인간들이 좀 편해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지혜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사실 과학은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는 수준이 아닙니까? 아무리 인간들이 좀 편해졌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한번 손을 쓰시면 아무 대책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20절)라고 합니다. 생명, 죽음, 죄와 같은 결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사람의 지혜나 지성, 학식이, 과학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선비”는 서기관, 학자를 뜻하며, “변사”는 변론인, 철학자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 지식인이나 철학자가 생명, 죽음,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사람을 어떻게 바꾸느냐, 못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도는 생명, 죽음, 죄 문제를 해결하며 그렇게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21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전도(khvrugma)”는 원어에 의하면 말씀 선포를 뜻합니다. 즉 십자가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의 지성인들이 좋아하는 토론이나 논쟁으로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토론이나 논쟁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나, 인간의 죄된 상태, 성령의 능력이나, 종말이 있다 없다에 대하여 토론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사람을 고치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성령이 역사하셔서 사람이 새로워집니다. 새로운 영혼이 탄생하게 됩니다. 참 빛이 그 영혼을 비취게 됩니다. 그래서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복음의 빛이 비추게 되면 그 사람의 지성이 참된 지성이 됩니다. 하나님을 점점 알아가게 되는 지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치료하는 가장 능력있는 치료의 방법이 십자가의 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25절)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으나”(22절) 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믿어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한다는 말은 그들의 종교성은 늘 기적을 찾는 데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기적을 많이 보여주셨어도 또 기적을 찾으며 믿지를 않았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기적만 찾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하셨음에도 또 다른 기적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원하는 기적이 나타나지 않으면 실망하고 믿음이 식어버립니다. 애초에 정말 십자가의 도를 믿었던 사람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마치 미신을 믿는 사람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영도 기적을 베풀거든요. 신비한 일을 하거든요.
   또한 헬라인은 지혜, 지식만 찾습니다. 참된 지혜가 아닌 것을 계속 추구합니다. 그래서 결국 허무주의로 빠져버립니다. 아니면 일종의 궤변이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철학, 오히려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철학을 만들어서 아무 것이나 자기 마음대로 어떤 체계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자신을 가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람이 미쳐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자살하기도 하구요. 다 비정상적인 인간들입니다.
   이런 현상은 결국 사람의 지성은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새롭게 하셔야만 참된 지성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큰 의사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수술하셔서 참된 하나님의 지혜로 살 수 있는 능력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무익한 농담이 아니라 남을 유익하게 하는 말을 합니다. 이제는 철학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나 사회학이나 정치학이나 경제학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학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 보아야 제대로 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아니 다른 교회가 뭐라고 하든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23-24절)고 한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거리끼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믿을 수 없는 헛된 말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들은 십자가의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임을 믿고 계속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꾸 복음이 변질되고, 인본주의로 흘러가는 교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어도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끝까지 주장하는 미련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어리석고 미련한 바보라고 해도, 정말 바보들은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믿지 않는 그들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구약 성경 66권의 말씀이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참된 진리임을 확실히 믿고, 그저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기를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우직하게 말씀만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개혁주의 신앙의 근간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빛으로 나를 개혁하고, 내 가정과 내 교회를 개혁하면 우리 사회도 개혁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처럼 기적을 찾는 것도 아니고 헬라인들처럼 세상 지혜나 지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날마다 찾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 위에 기초한 지혜야말로 나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만이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 눈물을 씻게 하는 소망입니다. 사탄의 권세를, 죄의 권세를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그 능력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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