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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8-27 (월) 07:1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16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니(고전 3:16-23)
지난 20여 년 전부터 미국에서 갑자기 커져버린 몇 몇 교회들을 따라서 열린 교회라는 이름으로 많은 교회들이 교회의 문턱을 낮추어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교회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자 애를 씁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주님을 만나게 하여 전도하고자 하는 노력은 충분히 이해하고 높이 살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냐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 문화를 끌어들여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 방법을 끌어들여 교회를 크게 만들어 가는 것이 정말 성경적이냐는 말입니다. 저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씀 드립니다. 바로 고린도교회가 그런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교회의 문을 그렇게 세상을 향하여 활짝 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향하여 닫으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기 때문에 아무도 성전을 세상의 것으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세상의 지식과 문화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지식이나 문화는 사람들 보기에는 대단하고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인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려야 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사도 바울은 구약 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외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16절)! 여기 “성전”이라는 헬라어 원어는 성전이 있는 지역, 그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소(sanctuary)를 뜻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법궤)가 있는 예루살렘 성소에 하나님이 계셨고, 그 성소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성전이라 하면 신성한 곳으로 사람이 더럽혀서는 안되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혀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성전의 개념이 처음 사용된 곳이 야곱 때였습니다(창 28장).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이 사는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치다가 들판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자다가 꿈에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땅에서 하늘까지 사닥다리가 놓여 있고 그 사닥다리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닥다리 꼭대기 위에 서서 야곱을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창 28:13-15). 그 때 야곱이 꿈을 깨고 나서 자기가 누워 있던 그곳을 하나님의 전, 하나님의 문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베고 자던 돌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그곳에서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사실 그 당시 야곱의 모습은 속이는 자요, 그래서 형 에서의 미움을 받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렇게 축복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셔서 죄인들과 화목하려는 모습입니다. 이 야곱에게 주신 계시가 성취된 것은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행진하다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전의 전신인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시고 그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막(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됩니다.
   이 성막(성전)이 하는 역할은 하나님과 죄인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소에서 죄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룹 사이에서 그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그들이 죄 용서함을 체험하는 곳이며, 그들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세상 나라에 대한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모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지만 그 성소에서 죄인들을 만나주시고, 은혜를 주시며, 세상을 다스리셨습니다.
   그런데 아시는 대로 예루살렘 성전이 남 유다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하면서 불타버렸습니다. 즉 더 이상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면하고 죄 용서함을 받으며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물론 70년 포로생활 후에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가 성전을 재건했지만 더 이상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후 그야말로 그 백성들에게는 전무후무한 깜깜한 암흑 같은 세상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400여 년이 지난 후에 새 언약의 예언하신 대로 그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죄 사함을 받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성전으로 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요 2:21). 그의 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있었습니다(골 2:9). 주님께서는 성전이 사라진 이스라엘 땅에서 죄인들의 죄를 사하는 선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함으로 단번에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누구든지 믿고 예수 이름으로 나아오는 자는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후 믿는 자들이 모인 곳에는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이 세상 한 가운데 있는 고린도교회처럼 예수를 주로 믿는 신실한 자들의 공동체 그것이 바로 구약의 성전과 같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들이 바로 그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차이는 있습니다. 구약시대처럼 돌이나 천막으로 지어진 성전이 아니라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본문 16절에 이어서 모든 성도들에게 경고의 말을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17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만약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멸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소를 지키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기를 원하시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 욕심이나 이익을 위하여 이 은혜를 막는 자가 있다면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도 성령이 거하시는 개인적인 성전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직접 손을 대십니다.
   그러면 성전을 더럽힌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성전이 거룩해야 하는데, 거룩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말합니다. “거룩”이라는 뜻은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세상과는 구별된 곳이라는 말입니다. 즉 세상의 것을 성전 안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 문화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바로 더럽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예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세상 지혜와 지식을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18-20절)!  즉 고린도교회 안에 세상 철학과 여러 사상이 들어와 교회를 더럽혔다는 말입니다. 아마 고린도교인들은 복음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상 여러 지식과 사상을 배우게 되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그런 세상적인 가르침에는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소위 유식한 사람들이 들어와 교인들에게 세상적인 지혜와 지식을 가르치다 보니 성령의 역사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눈에 눈물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 중 삶의 변화를 체험하는 자들이 없어졌습니다. 머리 속에 세상 지식은 많이 쌓여도 심령에 진정한 기쁨과 평안이 없어지고, 믿음의 능력도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히려 세상 지식에 미련한 자가 되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 안타까운 분들이 주로 자신이 갖고 있는 세상 지식, 철학이나 사상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사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자기 궤휼에 빠지는 것입니다. 속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절대로 그렇게 해석하여 사용하면 안됩니다. 내 세상적인 지식을 다 내려놓고 겸손히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태도로 들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듣고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세상 지혜나 지식은 단순히 정보(information)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정보, 혹은 사람이 만들어낸 이론이 사람을 살리거나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런 것이 다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은 사람을 치유하고, 고치고, 회복하고, 의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딤후 3:16).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실천하는 데 온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여 그 뜻을 분명히 알고, 내 삶에 적용하며 순종하는 것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역사하여 치유의 역사와 진정한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끝으로 이 세상에서의 교회의 사명은 진리의 말씀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것이지, 세상의 유명한 것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21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말은 세상 지식과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잘난 체하지 말게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끌어들이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말입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서론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그 의미, 존재가치가 회복될 수 있기에 교회가 만물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 만물을 향하여 진리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성령이 만물을 정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22-23절)고 부연설명을 하였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주신 명령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하셨습니다. 즉 말씀의 사역자들이던,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형상을 회복한 성도들에게 속한 것이며, 성도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속했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역사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모두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뜻입니다. 바로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우리가 다 지체가 되어 하나로 세상을 진리의 말씀으로 변화시켜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돌려드리는 일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으로 순수한 복음의 말씀이 선포하여 성령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사람들마다 다 교회관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래야 된다는 생각들이 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많이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흡족하게 맞추려면 교회가 분쟁이 일어납니다. 나뉘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을 통해 잘 배워서 성경이 말하는 교회관이 아니라, 나름대로 자기 마음에 드는 교회를 생각하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이 교회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이 자기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성전에 맞추어 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 진리의 말씀으로 계속 거룩해져 가야 성전이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 아닙니까?
   교회는 생수이신 예수님의 샘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와서 마음껏 마실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마시고 변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의 생수가 세상을 향해 자꾸 흘러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교회 안에 성령의 감동과 역사가 중단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결국에는 이 생수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샘을 지키는 것입니다. 샘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변질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배우고, 순종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세상 지식과 지혜, 문화가 교회를 더럽히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눈물로 기도하는 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세상 사람들을 살릴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다 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 새성전 시대를 코 앞에 둔 우리 모두가 세상적인 것들을 다 내려놓고 힘써서 진리의 생수가 흐르는 이런 모범된 교회를 세워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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