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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7-23 (월) 09:4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66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고전 2:1-5)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설교라 하면 재미없고 진부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흥미 없는 이야기를 길게 하면 ‘설교’ 그만하라고 농담합니다. 반면에 재미있는 이야기, 사람의 관심을 끄는 세상적인 이야기, 건강에 유익한 이야기를 하면 그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잘 듣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든 아까운 시간을 내서 무엇인가 들으려면 자기를 재미있게 하는 것 아니면, 들어서 유익한 내용을 듣고 싶어하지 30-40분, 길게는 한 시간 가량 사람들을 죄인이라 하면서 부담을 주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시간에 드라마를 보는 것을 아주 좋아하지요. 왜냐하면 사람 사는 여러 모습을 그려낸 드라마가 마치 자신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보는 듯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도 설교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설교자들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좀더 구미가 당기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세상적인, 인본주의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도 말하고 있지만, 이미 1장 21절에 강해에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할 때에 “전도”가 바로 진리의 “선포”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곧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설교라는 방법을 통하여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설교의 정의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대리자로 서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를 ‘하나님의 사자’라고 합니다. 설교자가 개인적인 지혜와 지식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강단에서 그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지, 개인의 자격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설교자도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허물이 많은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훈련시키시고 강단에 세우셔서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면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전해야 합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한 후, 그 죄를 숨기려고 우리아까지 전쟁터의 최전방에 보내어 죽게 한 후 1년 가까이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 나단 선지자가 나타나 왕에게 비유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양 100마리나 소유한 부자와 한 마리 밖에 없는 가난한 자가 있었는데,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왔을 때 부자가 가난한 자의 양 한 마리를 빼앗아 대접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크게 노하면서 그 부자를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나단 선지자가 바로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을 때에 다윗이 양심에 찔림을 받아 애통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바로 설교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설교를 통하여 죄인들을 일깨워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합니다. 사람의 양심은 죄로 인하여, 교만으로 인하여 타락해 있기 때문에 논쟁이나 인본주의적인 방법으로는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낮은 자리에 앉아서 설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양심의 찔림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1장 후반부에서 고린도교회의 분열의 원인이 세상 철학과 인간의 지혜, 교만 때문임을 지적했습니다. 소위 지성인들이라고 하는 고린도인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데 훈련이 되어 있었습니다. 새로운 지식이나 지혜에 대하여 배우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철학과 지혜가 많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헌데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으니”(1절) 라고 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지혜, 의로움, 거룩함, 구속함의 복음의 내용은 사람의 지혜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1:30). 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증거”를 선포할 때에도 사람의 말과 지혜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고린도에서 유행하던 철학이나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미사여구의 말솜씨, 수사학적인 웅변으로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도 드라마, 연극이 유행했는데 그 대사는 정말 감동적이어서 사람들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기 원합니다.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아니면 새로운 지식과 지혜로 나를 깨우치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말로 증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 “증거”라는 말은 말 그대로 사람이 본대로, 들은 대로, 경험한 대로 증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법정 용어입니다. 재판관 앞에서, 원고, 피고, 방청석에서 듣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사실 그대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증거했다고 해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증거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2절)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말씀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알고, 반복하여 늘 똑같이 기계적으로 전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얻기 위하여 이방인에게는 이방인들이 알아듣게 설교했고,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들이 알아듣게 설교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이 알아듣게 전했습니다. 물론 어떤 진리는 어려워서 한번 듣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 진리는 반복적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그가 쓴 서신서를 보면 중요한 진리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의 초점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며,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전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며,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보았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확실히 믿는 바를 진지하게 전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듣지 않는 체 하여도 그런 확신 속에 전하는지, 아니면 자신도 확신이 없으면서 어쩔 수 없이 전하는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믿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믿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열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확신에 찬 설교를 듣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여러분들도 확신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3절)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바울과 같은 사도에게 걸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아마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 올 때에 이미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많이 맞았고(행 16:22-24),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를 거치면서도 많은 핍박을 받고 급하게 아테네로 왔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고린도 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도 논쟁을 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행 17장). 너무 지쳐있기도 했고, 육체의 질병이나 자신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어 두려워했을 수도 있으나, 이렇게 타락한 고린도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면 어떻게 하나, 그러면 그 결과는 무섭고 떨리는 것이라는 말로 여겨집니다.
   그런 바울에게 승리의 확신을 준 것은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과 결과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9-10)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4-5절)고 한 것입니다. 사실 바울도 똑똑하기로 말하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 화려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그런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여기 바울의 “말과 전도함”이라고 하는 것은 2절에서 이야기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설교를 말합니다. 비록 그리스도와 십자가 설교가 재미가 없고 딱딱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사람의 마음 속에 감동을 주고 변화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께서 내 마음을 열어주셔서 내가 죄인이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것은 곧 성령의 능력이 내 속에서 역사한 것입니다. 즉 믿음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는 일시적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지만 영원하지 못합니다. 잠시 후면 예전 모습 그대로 입니다. 마치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그 내용에 빠져서 자신이 마치 주연이나 조연인양 생각이 되지만, 영화가 끝나면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떻습니까? 성령께서 그 심령에 역사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이전의 죄된 삶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립니다. 무덤 속에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부활하신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하게 됩니다(롬 6:4-11). 완전히 새 사람이 됩니다. 물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겉 모양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심령이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새 마음으로 인쳐주셔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감정도 주십니다. 감정이 새로워지니 주위 모든 것이 예전과 달리 새롭게 보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태어나 새 사람으로 새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정욕과 죄로 물들은 인생이었지만, 새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욕심대로만 살지 못합니다. 대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복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남은 인생을 복되고 보람 있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게 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설교 시간에 목사의 어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나 심지어 종교에 대한 강연을 듣고자 앉아 계신다면 잘못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딴 곳에 가셔야 합니다.
   뭐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많은 교인들이 설교를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의 탄생을 위하여 주셨던 많은 은사들 가운데 예언의 은사는 이미 성경 66권의 완성으로 끝났습니다(계 22:18-19).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가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면서 여러분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다고 말하면 사기꾼으로 아십시오. 그것은 무당, 점장이들이 하는 짓입니다. 속아넘어가지 마십시오.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성경 66권의 말씀을 풀어 선포하는 설교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그저 목사님의 개인 생각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설교자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의 말씀을 풀어서 설교를 하지 않고, 성경은 한 구절 읽어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설교자들 때문이라고 생각도 됩니다. 하지만, 설교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전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도를 전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개인에게 주시는 예언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죄인들의 양심을 깨우고, 성도들을 예수님 닮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참된 제자로 세우기 위하여 설교를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증거하셔야 합니다. 말솜씨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사람의 지혜나 수완, 재능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이라면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여셔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지금 듣고 있는 사람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 중에 택한 사람들의 마음을 여셔서 그 말씀을 자기에게 하는 말씀으로 듣게 하시고 결국 그로 하여금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십니다.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에 도저히 믿지 않을 사람 같은데 말씀을 듣고 난 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그 후부터 전혀 딴 사람이 되는 경우 말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증거가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성령께서 십자가로 인을 치는 것입니다. 그냥 말을 잘 해서, 혹은 분위기가 좋아서, 감정적으로만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그런 사람은 얼마 안되어 의심을 하게 되거나, 무슨 일로 인하여 주님을 떠나거나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해서, 진실로 믿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는 성령의 능력이 그 속에 나타난 것입니다.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하지요.
   복음을 전하다 보면 전하는 자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많은 일을 해 놓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저 나는 사용되는 도구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영적 분별력을 주시기 바랍니다. 누구의 설교를 듣고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인지, 사람의 지혜인지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설교자들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지혜나 지식, 의견을 말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부활을 전하는 설교자가 되도록,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는 설교자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경 66권의 말씀 만이 선포되는 우리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처럼 그런 설교를 듣는 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변화를 받아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변혁시키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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