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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6-18 (월) 06:1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42    
경건한 아버지의 모습(데살전 2:6-12)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아버지’라는 단어에는 무슨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만 떠오릅니까? 지난 과거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별로 좋지 않아서 입니까?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육신의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셔서 안 계신 분들은 영적인 아버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한 마디 따뜻한 말을 할 수 있는 오늘 Father’s Day 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가 되어 보기 전에는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기에 아버지의 부족한 모습이나 내 맘에 들지 않는 모습으로 인하여 내 잣대로 평가하며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던 적은 없었는지요. 그렇다면 회개해야지요. 철없던 자녀가 힘든 세상 풍파 속에 철들어 성인이 된 후에는, 실제로 자녀를 키우면서는 ‘아버지’라는 말만 해도 감동이 뭉클할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도 아버지들 나름입니다만, 그래도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피붙이 가족에게 온전히 헌신하고 살며, 특히 믿음의 아버지들은 우리의 감사를 받기에 충분한 이유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한편, 저는 오늘 아버지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 원합니다. 우리의 아내나, 자녀들에게 진정 존경 받는 아버지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 남편의 권위가 세워지기 원하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첫째, 여러분들의 대화는 긍정적입니까? 부정적입니까? 자녀들이 여러분들을 생각할 때에 우리 아버지는 ‘이것 저것 하지 말라’ 로, 아니면 ‘이것 저것 하자’로 떠올립니까? 둘째, 자녀들이 여러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최근에 아이들에게 존경 받지 못할 실수를 한 적이 있다면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고쳤습니까? 셋째, 가정의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적인 권리를 어떤 식으로 존중해 주고 있습니까? 넷째, 자녀들이 잘못을 범하였을 때에 여러분들은 왜 그들이 그런 잘못을 범하게 되었을까 이해하려고 합니까? 아니면 먼저 야단부터 치고 봅니까? 다섯째,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용서를 자녀들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어떤 실제적인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합니까?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실제적인 의사 표현을 하십니까?
요즈음 남자다운 남자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입니다. 남자도 여자처럼 하고 다니는 세상이니까요.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남자, 아버지 하면 그 가정에서의 지도자(Leader), 그 가정을 지키는 보호자(Guardian)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 지도자, 보호자의 역할을 어머니에게 넘겨버린 아버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니 오히려 가정을 무너뜨리며 파괴하는 아버지들도 많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아버지는 어머니 치마 속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똑똑히 사물을 분별하는 사고를 가지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일하며, 거짓이 없이 바른 말을 담대하게 하면서도 부드럽고 사려 깊은 사랑을 표현하는 아버지입니다.
적어도 우리 교회 남자들만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한 아버지의 모습을 추구하며, 그런 아버지로 세워지기 원합니다. 아내들도 남편들이 그런 아버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며, 미혼은 그런 남자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남자들이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의도대로 아내들도 존경하고 좋아하며, 자녀들도 공경하는 아버지가 될까요?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사도로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고자 함이 아니라고 하면서(6절) 그의 동역자들과 함께 영적 아버지로서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뜨거운 고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고백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몇 가지 경건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보기 원합니다.

   첫째로, 아버지들에게는 깊은 정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7-8절상) 라고 하였습니다. 유순하다는 말은 온유, 친절(gentleness)을 가리킵니다. 더 중요한 단어가 ‘사모하여’ 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상대에게 자신의 느낌이 확 빨려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이를 품에 안고 대할 때에 느끼는 감정입니다. 유모가 자기 자식은 아니지만 어린 아이를 깊은 정을 가지고 유순하게 기르는 것과 같이 사모한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아버지들에게 이런 정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부주의 하여 표현 되어지지 않으면서 시간이 흐르다 보니 깊은 정마저 시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솔직히 대답해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깊은 정이 있습니까? 그 정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그 아들을 향한 사모하는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하였습니다. 물론 잃어버려진 아들을 찾은 기쁨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여러분 같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깊은 정이 있다면 반드시 표현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주 자녀들을 안아주시면서 사랑의 표현과 함께 자랑스럽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온유함과 친절함이 나타나게 하십시오.

   둘째는, 아버지들은 온 가정 앞에 삶 전체가 투명해야 합니다. 8절 하반절에 계속하여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목숨까지 준다고 하였지만 더 원어에 가까운 번역은, 복음을 나눈 것뿐 아니라 삶을 나누기를 기뻐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중적인 삶이 아니었다라는 말입니다. 말하는 것 따로, 생활 따로 아니었다라는 말입니다. 교회 생활과 가정 생활, 사회 생활이 다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투명하였다는 말입니다. 깨끗하였다는 말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다 보고 배웁니다. 아버지가 이럴 때에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 돈은 어떻게 벌고, 어떻게 사용하는가, 여유와 웃음이, 유우머가 있는가, 실수나 실패를 하였을 때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등 이런 생활의 실제적인 모습들을 자녀들이 다 보고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삶이 뚜렷이 다 보여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확실하고, 영적으로 올바로 서 있음이 보여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그 동역자들처럼 자신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10절)! 거룩하고 옳고 흠이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증인이 되실 것입니다.

   셋째로, 아버지들은 이기적이지 않는 열심, 근면함이 있어야 합니다. 9절에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영적 자녀들이 ‘바울과 그 동역자들이 수고하고 애쓴 것을 다 알고 있지 않느냐’ 하면서 밤과 낮으로 일을 하였다 합니다. 즉 바울과 그 동역자들은 자비량 선교를 한 것입니다. 자신들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서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아버지들은 자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인 열심이 아니라, 가정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아버지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하여서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을 내면서도, 가정을 위하여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서는 게으릅니까? 무책임합니까? 언젠가는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다 알게 됩니다. 훗날 아버지를 향하여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이 흐뭇해 지겠습니까?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몇 가지 필요한 것들과 원하는 것들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그 많은 세월을 투자하심을 감사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버지를 알고 싶을 만큼 다 알지는 못하여도 아버지의 노력으로 우리가 누리는 많은 혜택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책임감있는 삶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넷째로, 아버지들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11절에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하였습니다. 즉 아버지의 역할은 자녀를 권면하고(encouraging), 위로하고(comforting), 경건한 삶을 살도록 훈계하는(urging to live godly life)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가르치되 자꾸 ‘안 된다’ ‘못 한다’ ‘NO’ 라고 하기보다, ‘된다’ ‘할 수 있다’ ‘YES’ 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녀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이해하며 그들의 눈으로 낮추어 보면서 말입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계속 오래하면 꾸짖기도 해야 하지만, 유순하게 ‘이것을 한번 해 보면 어떠하니’ 라든가, ‘이렇게 하면 어떨까’ 등으로 위로와 격려를 주면 자녀들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그들이 자라는 동안의 여러 가지 일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력이 되어버립니다. 그들 머리 속에 좋은 추억들을 많이 심겨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의 멘토가, 코치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들!
왜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살면서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고 싶은 것을 억제하고 이런 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까? 왜 어머니들은 우리의 아버지들이 이런 아버지들이 되도록 위하여 기도하며, 존중하며 사랑해야 합니까? 12절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삶이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한 우리를 어두운 가운데 부르셔서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그 하나님 나라와 영광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합당하게 행한다는 말은 가치있는 행함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부합하는, 그 영광의 가치에 맞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삶입니까?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까?
가정에서 남편이, 아버지가 끼치는 영향은 대단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많은 경우에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잘못으로 인하여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또한 큰 잘못을 범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성경에서 말하는 이러한 아버지 역할을 못하는 경우 그 가정과 속한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동지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어떤 아버지의 모습입니까? 이민 생활이 매우 힘들고 피곤하게 만들어도 우리 자녀들에게 깊은 정을 표현하며 살 수 있기 바랍니다. 사랑을 고백하며, 그들로 하여금 심적으로 안정을 누리며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다. 그리고 온 가정 앞에, 교회 앞에 우리의 삶 전체가 투명하기를 원합니다. 조금이라도 속이는 것이 없기를 원합니다. 분명하게 보여지기 원합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말입니다. 그러러면 영적으로 확실해야 합니다. 믿음이 진지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증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십니다. 물론 이 세상에 완전한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 부족하지만 부족한 부분들도 드러나지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 받고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때로는 자신을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싶어도 참고, 그저 주신 가정,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할 가정,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가정을 생각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삽시다. 나태해 지려는 자신에 대하여 채찍질 하면서 부지런히 삽시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바랍니다. 매일 야단만치는 아빠가 아니라, 격려와 위로가 넘치는, 삶의 힘과 용기를 주는 아빠로 그들의 기억에 남기를 원합니다.
완전한 아버지는 될 수 없어도 하나님께 참된 아버지로서 인정 받기를 원하며, 아내에게 신앙의 남편으로서 존경을 받기 원하며, 자녀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훗날 자녀들이 철들어 진정으로 감사하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어머니들의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협조가 필요합니다. 남편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격려와 위로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아 멘!
그 동안도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 이런 아버지로 살려고 애를 쓴 분들에게 참으로 격려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아시고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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