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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7-02 (월) 06:2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23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고전 1:10-17)
사실 인간 사회의 분쟁(싸움)은 생활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없이 싸우며 자라왔고, 또 주위에서 싸우는 것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유아기 때에는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심통을 부립니다. 유년기에는 원하는 방법대로 되지 않으면 울면서 싸웁니다. 조금 더 자라면 toy 나 basket ball 이나 football을 가지고 싸우든지, 아니면 원하는 팀에 들어가려고 싸웁니다.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자기 주장을 내세우느라 친구와 싸우고, 부부끼리 싸웁니다. 심지어 정치가들도, 장사꾼들도 싸웁니다. 아니 나라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원죄, 즉 죄성을 갖고 부패하고 타락한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생각과 마음, 행동으로 인하여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약 4:1-2)라고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때문에 주님께서 의인이라고 불러주시지만 아직 죄인들이기에 싸웁니다. 목사도 죄인이고, 장로도, 집사도, 권사도 다 죄인이기에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세상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사탄의 가장 큰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일단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역할’이, 그 기능이 정지되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주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일이지요. 마치 병원에서 의사들이, 간호원들이 서로 싸우면 환자 치료가 제대로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안에는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 안에서 분쟁을 일으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교회 안에서 파당이 생겨 서로 싸운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많은 문제들 가운데 사도 바울이 제일 먼저 다루는 것이 바로 이 교회 안의 분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기도에도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인 것처럼 이 땅의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요 17:11, 21-23). 한 몸이 되어 세상에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할 사명을 가진 교회이기에,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하기에 말입니다. 정말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초대 교회가 탄생하였을 때에는 날마다 온 교인이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는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행 2:46-47).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분쟁을 해결하고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10절)!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권하는데, 분쟁을 없이 하도록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에 서로 온전히 동의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교리에 대하여 동의하여야 합니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하여서 동일한 내용을, 구원을 받는 믿음이 같아야 합니다. 즉 교회가 하나가 되려면 믿는 교리가 같아야 합니다. 잘못된 교리이지만 어쩌면 이단들이 이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하나가 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10절에서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은 획일적으로 동일한 이야기를 로보트 식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믿는 진리의 내용이 같기에 같은 진리를 말한다는 뜻입니다. 믿는 교리가 같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합한다는 말은 위선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겉은 하나인 것 같은데 속은 다른 것이 아니라, 겉과 속이 같기에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1절을 보면 바울이 처음 고린도교회를 개척할 때에 많이 도와준 부인으로 생각되는 글로에 집으로부터 들리는 소식은 교인들 사이에 분쟁이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12절)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처음 바울에게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과 바울 다음으로 고린도교회를 목회 하던 아볼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이미 오래 전에 게바, 즉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나는 그런 사도들은 필요 없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속했다고 주장하면서 한 교회에 여러 파당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은혜를 받은 지도자의 편을 들거나, 특별한 정을 갖고 충성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겠습니다만, 그것이 교회를 나뉘게 하는 현상이라면 이는 자기 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서 당장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영이 살아있는 사람의 열매는 겸손입니다. 그래서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교만이 나타나서,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13절)라고 야단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자기가 세례를 준 사람들은 그리스보와 가이오 혹은 스데바나 집 사람들 정도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합니다(14-16절). 그렇게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세례를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도라고 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됨을 깨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아무리 탁월한 지도자라도 성도들이 우리 주님께 바쳐져야 할 충성을 가로채면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요, 오직 주님에게만 충성입니다. 그런 분들이 자연적으로 참된 지도자들도 존경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은 것도 아니요,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성도는 오직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었다고 합니다(롬 6:3-5).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라는 것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모든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 똑같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다 똑같습니다.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 눈에는 다 같습니다. 세상의 잣대로 재는 것은 마치 도토리 키 재기와 같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다 똑같습니다.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또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할렐루야!

   바울은 결론적으로 ‘내가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누구에게 은혜를 받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은 세상에 복음이 전해져야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합니다(17절). 십자가의 진리가 전파되는 것이 중요하지 사람의 말이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헬라 웅변가들은 화려한 언어를 구사하며 인상적인 수사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는데, 바울은 그들과 구별하여 순수한 십자가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능력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롬 1:16).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죄 용서입니다. 이 죄 용서를 가능하게 하신 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십니다. 먼저 믿은 우리 모두는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교인들이 이 목적을, 사명을 등한시하고 개인적인 야망이나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교회를 섬기면 반드시 분쟁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고, 떡을 떼며, 서로 섬기며 교제를 하는지 그 목적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어 주위에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 앞으로 돌아오고, 상한 심령들이 치유가 되고, 땅 끝까지 선교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책임을 잘 감당하려면 온 교인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비록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지만, 아직 죄성이 남아 있는 우리가 교회라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 가면서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먼저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인내를 통해서 입니다. 미성숙하여 철들지 않았을 때에는 자기 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했지만, 철들어 성숙해지면 주님을 닮아가려는 선한 갈망이 생깁니다. 가능하면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 중심으로, 교회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려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고 하였습니다. 특히 성숙한 성도들이 미성숙한 성도들에 대하여 참아주어야 합니다. 쉽게 판단하고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간혹 어떤 사람은 거의 불신자 수준에서 자기 고집만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조차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이만큼 변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너무 천천히 변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른 성도들이 빨리 변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정죄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과 인내로, 온유와 겸손으로 기다려 주면서 하나됨을 지켜가야 합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겸손으로 허리를 동일 때 사탄이 틈탈 기회가 적어집니다.
   또한 사명을 잊으면 안됩니다. 목적의식을 갖고 교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는지 그 이유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 서로 싸우면 어떻게 복음을 전합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까? 사탄, 마귀의 놀이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지도자들은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가 분열되는 경우는 대부분 지도자들 때문이지 평신도 때문이 아닙니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나 지회장, 구역장 등 지도자들이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찢겨져 분열이 되면서 많은 교회들이 생기게 되어서 교인들이 많아진다면서 분열을 합리화시키는 분들이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상처를 입고, 교회가 힘과 시간을 낭비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웁니까? 그것은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 본다고 하는 것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않느냐는 식입니다. 사실 결과도 그렇게 분열이 되어서 참 교인들이 많아졌다고 믿지 않습니다. 물론 한 교회가 너무 커져서 정상적으로 나누어져서 두 교회가 되고, 세 교회가 된다면 아주 바람직스러운 현상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민교회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지켜가려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에서 계속적으로 선포되고 교인들이 그 말씀을 잘 먹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속적으로 하나됨을 지켜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올바로 먹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반드시 영양실조에 걸려 병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탄의 공격에 그냥 쓰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음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검인 말씀을 붙드는 교회, 말씀을 붙드는 교인들은 사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이 되었어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불순종하고 자기만을 주장하고자 하는 죄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죄성을 성령 아래 굴복시키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기꺼이 성령에게 복종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자발적으로 내주하시는 성령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내 자아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내 편견과 고집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랑과 인내로, 늘 말씀을 먹으면서 주신 사명을 잊지 않고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켜 나가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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